MedicalTimes
  • 오피니언
  • 이슈칼럼

상부상조 '의료생협' 절차무시하면 위법단체로 전락

오승준 변호사
발행날짜: 2021-08-11 05:45:50

오승준 로펌 BHSN 변호사

오승준 변호사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나 조산사, 국가·지방자치단체,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준정부기관, 지방의료원,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의료법 제33조 제2항). 개설된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요양기관으로 당연 지정되기 때문에, 미리 고시된 범위 내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요양급여(보험금)를 청구해야 한다.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있는 수단들

한편, 과거부터 비의료인, 특히 영리법인(기업)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고자 할 경우 여러 우회적인 수단들이 이용되어 왔다. 차라리 대기업이라면, 학교법인·재단법인 등을 사실상 인수하라는 조언을 드릴 것이고, 의과대학이 있는 학교를 인수할 수 있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자본력이 있다면 의료기관의 개설과 운영에 합법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반면에 의과대학을 가진 학교법인을 인수할 만큼의 돈은 없지만, 병원을 운영하고 싶은 기업 또는 개인은 1차적으로 의료법인 설립을 검토해볼 수 있다. 의료법 제48조에서는 의료법인 제도를 규정하고 있는데, 어느 규정을 찾아봐도 꼭 의료인만 의료법인의 이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공부를 해보면, 비의료인이 주축이 되어서 도심에 의료법인 허가를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탈법적으로 웃돈을 주고 의료법인을 인수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의료 생협의 등장

그래서 유행처럼 많이 이용된 탈법적 수단 중에 “의료생협” 이라는 단체가 있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따라 최소 500명의 조합원들이 조합원 1명당 50,000원 이상의 출자금을 납부하여 출자금 총액이 1억 원 이상이 되는 등의 요건만 충족하면 생활협동조합(생협)을 설립할 수 있고, 그 조합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

원래 생협의 취지는 특정 지역이나 모임 등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500명이 상부상조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소비자들의 자주ㆍ자립ㆍ자치적인 생활협동조합활동을 하라는 것이고, 그 일환으로 의료사업이 있는 것이다. 이런 좋은 취지로 설립한 조합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으나, 그런 의료생협이 얼마나 있겠는가. 보통은 1~2명의 주도자가 주축이 되어 움직이면서 지인들 500명의 동의를 얻어 형식적인 서류만 갖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렇기에 늘 규제당국의 감시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및 시행규칙 등이 정하는 서류를 모두 갖춘 경우에는 의료생협을 규제할 수 있는 특별한 수단이 없기에, 비정상적인 의료기관이 운영되는 모습을 눈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울산지방법원 2020고합129 판결 등

하지만 몇 년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모 검사가 “의료생협이 조합원들 자발적으로 자본금을 납입하지 않았고, 설립총회 등을 제대로 개최하지 않고 서류만 꾸몄다면 그것은 의료법 제33조 제2항을 위반하여 탈법적으로 개설된 의료기관이다” 라는 취지로 모 의료생협 이사장을 기소하면서 생협의 개설 과정에 대한 단속 메카니즘이 정립되었다.

그리고 그런 취지의 조사·단속이 꾸준히 이루어지면서 최근에 선고된 울산지방법원 2020고합129 판결에서는 의료생협의 설립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위 사건의 피고인들은 조합의 설립 목적, 취지, 조합원의 의미 및 출자금 납부의무 등에 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지인들이나 가족들에게 조합 설립동의서에 서명・날인하게 하는 방법이나 기존에 다른 조합 명부에 기재되었던 사람들의 명의를 그대로 이용하는 방법으로 조합원 인원을 304명으로 맞추고, 출자금의 일부를 대납해 주기도 했다.

심지어 사실은 조합과 관련하여서는 발기인회가 구성된 적이 없음에도 총 30명의 발기인회가 구성되어 2012년 12월경부터 총 5회의 발기인회가 열렸다는 내용의 허위의 회의록을 작성하게 하고, 발기인 명부에는 조합 발기인이 되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재하기도 하였다(2012년경에는 500명이 아닌 300명의 조합원 만으로 개설이 가능했음).

위와 같이 거짓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작성된 발기인 명부, 조합 설립동의서, 출자금 납입 증명서, 발기인회 의사록 등을 울산시장에게 제출하여 조합 설립인가를 받고, 울산 남구에서 요양병원을 개원하였다. 결국 비의료인의 보건·의료사업을 하기 위한 탈법적인 수단으로 악용하는 방법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였다고 인정되어 징역 5년의 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의 시사점 및 의료생협 개설 과정에서 유의할 점 등

내가 의료 생활협동조합 설립 및 의료기관 개설 업무를 자문할 때 첫 번째로 중시하는 것은 “조합원의 모집 방식·과정” 이다. 생협의 설립을 추진하는 사람은 “병원 설립에 필요한 동의서를 받는다” 라는 개념보다는, “함께 병원의 주인이 될 조합원을 설득하여 참가자로 모집한다” 라는 개념으로 업무에 임해야 하며, 따라서 실질적으로 그 병원을 이용할 수요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야 한다.

모 기독교단체에서 의료생협 설립을 추진하던 일을 자문한 적이 있는데, 그 생협은 추후 재활의학과, 정형외과 등을 운영할 계획이었기에 주로 운동선수들, 재활 치료가 필요한 교통사고 후유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립동의서를 받았고, 병원 이용에 편의를 제공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5 ~ 10만원의 출자금을 본인 명의로 입금 받았다. 이럴 경우 의료생협의 입법취지와 부합한다.

반면에 위 판결과 같이 조합원의 의미 및 출자금 납부의무 등에 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지인들이나 가족들에게 조합 설립동의서에 서명・날인하게 할 경우에는 반드시 문제가 될 수 있다. 출자금을 대납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되는 행위다.

다음으로 발기인회, 총회 등은 실제로 개최해야 히며, 모든 과정을 동영상으로 녹화할 것을 추천한다. 창립총회의 의사는 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므로, 적어도 250명이 출석할 수 있는 공간은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주로 대강당 등을 빌려서 진행하는데, 아예 처음부터 감시를 받으며 총회를 진행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정관 승인, 예산 의결, 이사장 등 임원 선출 등을 정확히 의결해야 한다.

위 판결과 같이 발기인회가 구성된 적이 없음에도 발기인회가 구성되어 열렸다는 내용의 허위의 회의록을 작성하는 행위는 설립 과정에서 의료법을 위반하였다는 근거가 될 뿐만 아니라, 사문서위조죄 및 동행사죄를 구성할 수도 있기에 주의를 요한다.

그 밖에 대의원 총회, 임원 구성, 1인이 납부할 수 있는 출자금의 한도 등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므로,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여 진행할 필요가 있겠다.

한편,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자가 개설한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급여를 실시하고 급여비용을 청구하는 경우, 국민건강보험법 제57조에 의한 부당이득징수처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의 일관된 태도이다(대법원 2020. 7. 9. 선고 2018두44838 판결 등).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사업이라도, 개설 절차에 문제가 있으면 위법한 의료생협으로 판단되어 그 동안의 요양급여까지 전부 환수될 우려가 있으니, 요즘의 분위기에서는 더욱 주의를 요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