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예상보다 2조4천억 덜 썼지만 코로나 대응에만 2조원 투입 건보공단 내부서도 "국고 대신 건보재정 사용 문제있다" 우려 제기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의료기관 이용률이 전반적으로 줄었지만, 코로나 검사 및 확진자 치료 등에 건강보험 재정이 투입되고 있다.
여기에다 코로나 백신 접종 사업에 건보재정을 투입하고 있으며, 전화상담 처방 한시적 허용, 감염예방관리료 지원 등 각종 수가가 신설됐다. 의료기관에 미리 줬던 요양급여비 선지급금도 아직 모두 돌려받지 못했다.
의료 이용률 감소로 건강보험 재정이 예상했던 것보다 적게 나갔지만, 예정에 없던 코로나19 관련 비용 지출이 꾸준히 늘고 있어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은 '문재인 케어'라고 불리는 보장성 강화 정책에 따라 2018년을 기점으로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은 적자 형태로 운영 중이다.
구체적으로 2018년 건강보험 재정 수입은 62조1159억원이었는데 지출은 62조2937억원으로 1778억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듬해인 2019년은 수입이 68조643억원, 지출이 70조8886억원으로 당기수지가 2조8243억원 감소로 나타났다.
지난해는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서 수입은 73조4185억원, 지출은 73조7716억원으로 당기수지가 3531억원 줄어든 상황이었다. 당초 예상한 당기수지보다 약 2조4000억원 감소폭이 줄었다는 게 건보공단의 계산.
다시 말하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함께 진료비 증가율 등을 반영하면 당기수지가 2조7000억원 정도 될 것으로 예측했는데, 의료 이용률 감소 등으로 2조4000억원을 예상보다 덜 썼다는 소리다.
건보재정, 코로나19 대응에 얼마나 쓰이고 있을까
문제는 이 비용이 고스란히 코로나19 대응 등으로 쓰이고 있고, 앞으로도 쓰일 것이라는 점이다. 예정했던 보장성 강화 정책도 추진해야 한다.
8월 기준 코로나19 환자 치료비로는 총 9829억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쓰였다. 치료비는 크게 입원진료비, 진단검사비, 백신 접종비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졌다.
세부적으로 보면 입원진료비에 투입된 비용이 5355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진단검사비 2296억원, 백신시행비 2178억원 순이었다.
여기서 백신시행비는 9월 9일 기준, 1619만명에 대해 이뤄진 비용이다. 이후에도 두 달 가까이 전국민 접종완료율 70% 이상을 목표로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그 비용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실제 예방접종을 2차까지 완료한 사람을 놓고 단순 계산해보면 13일 현재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만 3120만8900명이다. 이들이 두 번의 예방접종을 했다고 봤을 때 예방접종비 약 1만9000원을 적용하면 총 1조1859억3820만원이다. 이 중 건강보험에서 70%만 부담하니 총 8301억원이 건보 재정에서 나간 게 된다. 앞으로 부스터샷까지 고려하면 접종시행비는 폭발적으로 늘 예정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8월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건강보험 재정소요 분석 내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2개 분야에서 36종의 코로나 관련 수가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일부 내용을 살펴보면 6월 기준 ▲요양병원 입원격리관리료 43억2000만원 ▲호흡기전담클리닉 196억9000만원 ▲국민안심병원 682억1200만원 ▲생활치료센터 입원진료비(8월 기준) 352억7000만원 등을 지급했다.
여기에다 지난해 재정에 어려움을 겪던 의료기관에 건강보험 급여비를 선지급했다가 6월까지 돌려받지 못한 금액도 약 9300억원에 달한다.
이들 금액을 모두 더해도 얼추 2조원은 훌쩍 넘는다. 결국 의료 이용률 감소로 덜 쓴 건강보험 재정이 코로나19 관리에 투입되고 있는 것.
"국고에서 써야 할 돈 왜 건보재정에서 갖다 쓰나" 비판
상황이 이렇자 건강보험 재정을 감염병 유행 같은 국가 위기 상황에서 투입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 의사단체 임원은 "건강보험 재정은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코로나 같은 상황은 예측하지 못했다"라며 "건보재정에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국고 써야 하고, 지방자치단체도 재정을 일부 부담하는 형태로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척추MRI, 심초음파 등 덩어리가 큰 급여화 과정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비정기적인 사건에 건보체계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며 "건보재정이 쌈짓돈도 아니고 누적 적립금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라고 꼬집었다.
건보재정을 운용하는 건보공단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건보공단 노동조합도 코로나 예방접종에 건보 재정을 사용하는 것을 놓고 성명서를 내고 비판한 바 있다.
건보공단 노조는 "코로나19 위탁의료기관 백신접종비를 건강보험 재정에서 충당하겠다는 방침은 정부 재정 지출 최소화 전략의 일환이며 책임 방기"라며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건보재정은 국가 예산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건보공단 고위 관계자도 "특히 예방접종비는 현행법에서도 국고 지원을 명시하고 있는데 진통을 겪으면서까지 건보재정을 쓰고 있다"라며 "지금이 비상 상황이지만 원칙적으로는 국고에서 관련 비용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고에서 확보되지 않은 부분은 추경에 반영하면 된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도 "환자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건강보험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건보재정 사용이 마땅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딜레마"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