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대통령은 백신부작용에 대해서 정부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정부는 백신부작용으로 사망한 경우 피해보상금 4억을 지급하겠다고 당당하게 발표했는데,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부가 백신부작용 피해보상금으로 책정한 초기 예산이 약 4억이었다.
백신부작용의 위험성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았어도 이슈만 안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어느 쪽이든 심각한 것이다. 그 결과 10월 중순 기준 백신부작용으로 보고된 사망 1100여건, 중증 1만여건 중에서 인과성이 인정돼 정부의 보상을 받은 건은 사망 2건, 중증 5건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이렇게 가벼울 수 있을까.
필자는 이전 칼럼(2021.4.23.)에서 정부의 백신부작용 인과관계 저평가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말한 바 있다. 식약처에서 일하면서 의약품 부작용의 인과관계를 저평가하는 몇몇 비윤리적인 제약회사들을 보았는데, 지금 정부의 모습이 그러하다.
백신부작용으로 고통하는 국민들의 소리에는 귀를 닫고, 오로지 백신접종률만 올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같이 폭주기관차 마냥 백신접종에 열을 내는 정부의 모습은 부작용에 대한 면책특권을 받고 어떻게든 백신을 팔아 이윤을 추구하려는 제약회사와 다를 바 없다.
필자뿐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이 정부의 백신부작용 인과관계 평가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최근 필자는 TV조선 '탐사보도 세븐'에서 백신부작용을 다루는 방송을 보았는데(필자의 인터뷰 내용도 일부 방송됨), 환자의 주치의(의사), 역학조사관(모두 의사)이 문제의 사례들에 대해서 모두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상식적인 의사의 인과관계 평가인 것이다.
방송에서 피해자의 부모는 정부를 믿고 백신을 맞았으니 끝까지 책임져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국정감사장에서 한 백신부작용 피해자의 가족은 '국민이 있고 국가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은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국정감사 중에는 폭넓은 지원 방안을 찾아 논의하겠다고 말했지만, 국정감사 후 제출한 서면답변서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또 한 언론사는 질병관리청이 2022년 백신부작용 지원예산을 전액 삭감했다고 보고했다. 필자는 정부의 비열함과 무자비함에 치가 떨린다. 이게 나라인가.
또 식약처는 조건부허가로 승인된 백신의 시판 후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전혀 하지 않고 있다. 할 수 없다고 얘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평상시 전혀 하지 않던 일을 갑자기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시판 후 안전성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점(시판후 안전성 정보 중 가장 중요한 PSUR-Periodic Safety Update Report-을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음), 특히 조건부 허가된 의약품의 안전성 모니터링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이 또한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필자가 식약처 고위공무원들을 직무유기로 검찰에 고발한 이유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하나도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미국의 식약처인 FDA, 유럽연합의 식약처인 EMA가 백신부작용을 분석해서 발표하면 copy&paste 하는 것이 고작 식약처가 할 수 있는 일일 테니까. 부끄러운 줄 알기 바란다는 말도 이제는 하지 않겠다. 부끄러움이라고는 모르는 조직인 것 같으니 말이다.
국가는 백신부작용 피해자들을 버렸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가 유일하게 극장에서 두 번 본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런 나레이션이 나온다. "병자호란 이후 나라는 포로 송환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소수의 사람만이 자신의 힘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또 필자가 좋아하는 한 가수는 이런 말을 했다. "역사책을 봐도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냐 하면 보통의 국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신부작용을 겪지 않거나 또는 부작용을 견디고 회복됐다. 다행이다.
그러나 백신부작용 피해자는 사실 내가 됐을 수도 있고, 내 가족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을 국민이 했으면 좋겠다. 사실 필자는 백신부작용 피해자들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용어가 맞는지 모르겠다)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누군가 이 일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 그들을 위로하고 또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조차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