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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비 차등제 확대보다 효과 평가 우선돼야

안기종
발행날짜: 2021-11-08 05:45:50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고혈압·당뇨병 등 동네의원에서 치료해야할 경증질환 환자들이 언제부터인가 상급종합병원에 몰리면서 의료전달체계를 왜곡하는 주범으로 인식되었다.

안기종 대표.
보건복지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1년 10월부터 동네의원에서 주로 치료받는 52개 경증질환을 선정해 이러한 질환을 가진 환자가 동네의원과 병원을 이용할 경우에는 약제비 환자본인부담금을 30%로 동일하게 받지만 종합병원을 이용하면 40%,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 50%로 인상했다. 일명,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를 시행했다.

2018년 11월에는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대상 질환을 52개에서 100개로 확대했다. 2020년 10월 8일부터는 100개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대상 질환을 가진 환자가 상급종합병원 외래진료를 받는 경우 환자본인부담율을 60%에서 100%로 인상했고, 상급종합병원은 의료질평가지원금과 종별가산율 산정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많은 의료전달체계 개선방안 중에서 유독 진도가 많이 나간 것이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다.

이에 반해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추진으로 인한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얼마나 해소되었는지 그 효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동네의원 의사가 많이 참여하는 대한개원의협의회와 대한의사협회 그리고 보건복지부는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시행 효과가 있다는 입장에서 찬성하지만 상급종합병원 의사가 많이 참여하는 의학회와 대한병원협회는 효과는 미미한데 환자 의료비 부담만 증가시켰다며 반대하고 있다.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의료이용체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찬성하는 시민단체의 주장과 환자의 의료이용체계 개선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의료기관 선택권을 제한하고 환자 본인부담율을 인상하려면 동네의원 의료서비스의 질에 대한 담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소비자단체와 환자단체의 주장이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환자는 왜 동네의원을 건너뛰고 상급종합병원으로 가는가?

환자들은 왜 집에서 가깝고, 비용도 저렴하고, 대기시간도 짧은 동네의원을 건너뛰고 집에서 멀고, 비용도 비싸도, 대기시간도 긴 상급종합병원으로 향하는 걸까? 이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알아야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동네의원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불만과 상급종합병원의 의료비 문턱을 대폭 낮춘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의 증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동네의원에는 전문의가 넘쳐난다. 상급종합병원에 있어야 할 전문의들이 대거 개원을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자들이 원하는 일차의료는 전문의가 수련한 질환 치료를 넘어 고혈압·당뇨 등의 만성질환 관리, 질병 예방, 정신 및 정서적 스트레스·식습관·운동·수면·건강식품 등의 건강 상담에 까지 이르고, 환자와의 신뢰관계 형성을 위한 인격적 진료와 환자 눈높이에 맞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까지 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동네의원은 환자들의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동네의원은 일차의료 관련 다양한 기능을 포괄하고 지속적 관리와 인격적 진료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환자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일차의료 관련 전문적인 교육과 수련 과정을 마련해 상급종합병원과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8명이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은 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에서 치료받는 데 있어서 경제적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고, 상급종합병원들도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를 선호해 대형병원 쏠림현상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100개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대상 질환 환자가 상급종합병원 이용 시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결국 부자들과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의 상급종합병원 이용은 허용하고, 저소득층 환자들의 상급종합병원 이용을 막는 차별 조장과 형평성 문제를 야기한다.

환자에게 의료비 부담을 증가시키는 대형병원 쏠림현상 해소방안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없는 한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대상 질환 확대 논의, 제도 효과 평가 후에 추진해야

보건복지부는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시행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제도 확대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현재 정책연구를 추진 중에 있다. 문제는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시행 효과에 대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한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대상 질환을 현재 100개에서 추가로 더 확대하기 위해 올해 5월 6일 ‘약국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제도개선 협의체’를 구성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논의 중인 추가 확대 대상 질환은 동네의원 다빈도 진료 100개 질환이다.

환자단체는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적용 대상 100개 질환 이외 추가 질환 확대에 대해서는 기존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시행에 따른 의료전달체계 개선 효과가 불분명하고, 국민 대대수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해 있음으로써 약제비 인상에 의한 대형병원 쏠림현상 해소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논의 중인 100개 대상 질환 확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대상 질환 전체 확대에 찬성하지만 대한병원협회는 대상 질환 전체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회의화와 의학회는 대상질환 일부 확대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특히, 현행 100개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대상 질환이 상급종합병원 지정기준과 의료질향상지원금 산정기준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대한병원협회 뿐만 아니라 대한의사협회도 보건복지부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대상 질환 확대 논의에 속도를 내기보다는 잠시 중지하고, 제도 시행 효과를 평가하는 정책 연구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를 토대로 다시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사회적 타협점을 찾는데도 유리하다.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약제비 본인부담 차등제’ 대상 질환을 일부 확대한다고 곧바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면 모두가 불만인 대상 질환 확대 논의를 잠시 중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가 진지하게 고려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