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발사르탄 사태와 유사하게 고혈압 치료제 로사르탄 성분 의약품에서 불순물이 검출되면서 의료기관은 또다시 대대적인 의약품 회수 및 재처방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로사르탄 사태를 접하는 의료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회수와 재처방에 걸리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지게 되는 의료기관 책임은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제약업계에서는 로사르탄 사태 발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떠맡는 동시에 이를 약속하는 '각서' 형식의 확약서까지 요구받으면서 정부를 향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10일 제약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고혈압치료제 로사르탄 성분에서 아지도(Azido) 불순물 검출을 확인하고 병‧의원에서 처방 중인 품목을 전량 또는 일부 회수하기로 했다.
시중 유통 중인 306개 품목(99개사) 중 로사르탄 아지도 불순물이 1일 섭취 허용량을 초과해 검출되거나 초과 검출이 우려되는 품목은 나타난 것은 295개 품목(98개사)이다. 이 중 전체 제조 번호가 회수되는 품목은 241개, 일부 제조 번호만 회수되는 품목은 54개다.
복지부는 재처방 시 병‧의원과 제약사 간 원활한 비용 사후정산을 위해 건강보험청구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병‧의원이 시스템을 통해 재처방을 하게 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를 해당 제약사에 청구한 뒤 이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시스템을 통해 정부가 중계를 해줌으로써 제약사가 로사르탄 사태 발생에 따른 금전적 책임을 전적으로 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2년 전 발사르탄 사태에 따른 학습효과다.
발사르탄 사태에는 병‧의원이 재처방을 할 경우 환자들의 본인부담금을 의료기관이 일부 떠안게 되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이번 로사르탄 사태에는 환자부담금까지 모든 금전적 책임을 생산 제약사에 묻기로 했다.
대한의사협회 민양기 의무이사는 "발사르탄 사태 당시에는 의약품 재처방 시 사후정산 금액의 70%는 건보공단이 부담하고 30% 환자부담금은 별도로 보상받지 못하고 의료기관이 손해 보고 포기했었다"며 "발사르탄 사태 때에는 발생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하면서 의료기관이 부담을 안게 됐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로사르탄 사태에서는 건보공단이 70%의 부담금을 부담하지 않는다. 제약사 재처방 등 회수에 따라 발생하는 모든 비용 부담한다"며 "발사르탄 사태와는 다른 것이 이번 사례는 제약사의 원료 문제 책임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다소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귀찮을 수 있지만 사후정산을 통해 해당 제약사에 비용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로사르탄 사태 발생에 따른 사후정산 책임을 제약사가 전적으로 지게 되면서 관련 기업을 중심으로는 내부 대응방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제약업계에서는 소위 '각서'라고 불리는 사후정산 책임 '확약서'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하면서 불만이 더 가중되고 있다.
이를 거부했다간 특정 제약사가 의료계 전체와 갈등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면에서 사후정산책임을 떠안으면서도 막상 공개적으로 불만 표시도 어려운 형국이 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사 임원은 "병‧의원 개별로 로사르탄 재처방에 따른 사후정산을 할 수 없으니 복지부가 중계를 해주는 것인데 이번 사태 책임을 제약사가 모두 떠맡는 것"이라며 "최근 식약처가 회사에 사후정산 비용 책임을 약속하라고 각서까지 보내왔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그는 "식약처는 안전성 조치에 따른 회수 결정만 하고 나머지 책임은 나 몰라라 하는 것으로, 법적으로 대응할 것인지 내부 논의를 하는 중"이라며 "아직 식약처가 보내 온 각서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지만 제약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미는 것은 문제다. 발사르탄에 이어 이번 로사르탄 사태 등에 대비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절차 마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