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초음파·혈관 시술 실전 수련 "전문의 채용 응급실 당직 경감" 컨퍼런스·회진 교수 전담 "전공의들 값싼 노동력 아닌 동료 의사"
|기획|전공의 없는 흉부외과·소청과 최악의 위기
2022년도 레지던트 모집 결과 흉부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처참한 결과를 받아 들어야 했다. 4년이라는 수련기간 동안 전공의가 한 명도 없는 병원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메디칼타임즈는 흉부외과와 소청과 수련병원의 현실을 살펴보고, 심폐소생 가능성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상>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 대가 끊겼다 <하>추락 속 정원을 채운 수련병원의 비밀은?
필수과인 소아청소년과와 흉부외과가 역대 최저 전공의 지원율을 기록하며 깊은 수렁에 빠졌다.
최근 마감된 '2022년도 전국 수련병원 전문과목 레지던트 1년차 지원 현황'에 따르면, 소아청소년과는 지원율 23.5%(전년도 30.8%), 흉부외과는 지원율 39.6%(전년도 54.2%)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도 정원 미달 사태를 보였으며, 수도권과 지방 대다수 대학병원은 정원 미달과 지원자 '0명' 행진을 이어갔다.
다행인 점은 일부 수련병원이 악조건에서 전공의 정원을 채워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병원의 비기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표현하면 수련과정 '디테일'에서 명암이 갈렸다. 인건비 파격적 지원 등 금전적 문제가 아니라 지도전문의 교수들의 세심한 숨은 노력이 젊은 의사들의 마음을 잡은 셈이다.
■건양대 소청과, 내시경·초음파 수련 추가 "이해와 배려 성장 원동력"
건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는 최근 10년간 전공의 정원을 모두 채웠으나 2022년도 2명 모집에 1명 지원으로 절반의 성공이라는 쓴 잔을 마셨다. 하지만 소아청소년과 전제 지원율 23.5%와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건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의 최대 강점은 전공의에 대한 교수들의 세심한 배려.
수련병원 내부의 불문율인 '전공의는 값싼 노동력', '일꾼'이라는 과거의 관행을 탈피해 피교육자이고 동료 의사라는 수평적 관계로 전환했다.
수련 내용도 개원과 봉직에 대비한 실전 중심으로 개편했다.
병실에 내시경과 초음파 장비를 마련해 단순한 입원환자 관리 당직 개념에서 벗어나 수련기간 4년을 마치면 소아 내시경과 초음파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일차의료 의사로 성장시켰다.
또한 2년 전부터 개원한 동문 선배들을 초빙해 환자 진료와 검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케이스를 학습하는 웹 세미나를 매달 마련해 개원과 봉직에 대한 전공의들의 불안감을 상쇄시켰다.
건양대병원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수련과정 주된 스트레스인 컨퍼런스 준비와 타과 당직, 회진 시스템을 개선했다.
매일 아침 컨퍼런스를 전공의가 아닌 발표 교수가 직접 준비하고, 응급실 당직 전문의를 별도 채용해 전공의들의 타과 당직과 야간 온콜 부담을 대폭 완화했다.
또한 교수들 입원환자 회진 시 전공의 동행 관례를 깨고 수련에 반드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교수 스스로 환자 차트를 확인하고 회진하도록 바꿨다.
여기에는 건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천은정 과장을 비롯한 8명 교수의 배려와 노력이 있었다.
천은정 과장은 "전공의들이 가장 필요한 하는 것은 개원과 봉직에 필요한 실전용 수련이다. 지난 10년간의 정원 달성을 이루는 데 큰 힘이 됐다"면서 "전공의법 시행 이후 주 80시간 수련과 연차 휴가 사용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의들은 더 이상 값싼 노동력과 아랫사람이 아니라 소아청소년 건강을 책임지는 동료 의사"라며 "2022년도 정원을 절반 밖에 못 채워 아쉽지만 전공의와 교수 간 이해와 배려가 건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성장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노력도 남달랐다.
■충북대병원 소청과, 3명 정원 모두 채워 "교수들 당직 자처"
2021년도 3명 정원에 0명에서 2022년도 정원 3명을 모두 채우는 이변을 기록했다.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2명으로 전공의 4년차를 합친 수보다 많다.
전공의 미달을 오랜 기간 경험한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는 분명한 원칙을 정했다. 전공의 연차별 당직 일수를 정하고, 이를 초과할 수 없게 했다. 지난해부터 전공의 미달로 부족한 당직 일수는 교수들이 맡아 전공의들의 당직 부담도 줄였다.
또한 신생아 중환자실 업무와 응급실 당직의 경우, 간호사와 전문의 채용을 통해 전공의 노동 강도를 대폭 경감했다.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의 강점은 세부전문의 교수 포진에 따른 다양한 진료 케이스 경험이다. 미숙아와 소아 암환자 등 중증질환부터 경증질환까지 경험할 수 있어 개원과 봉직에 대처할 수 있다는 의미다.
주 3회 아침 컨퍼런스는 교수들이 준비하고, 전공의들이 경청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고, 논문 작성을 원할 경우 교수를 선택해 주저자 참여가 가능하도록 했다.
교수들이 의국실에서 전공의 기다리고 대화를 나누는 등 친숙한 의국 분위기 조성에 세심한 노력과 당직이 아닌 전공의는 오후 5시 30분 칼 퇴근 문화도 전공의 지원에 한 몫 했다.
소아청소년과 이지혁 교수(충북의대 교육부학장)는 "전공의에 대한 교수들의 인식은 과거와 다르다. 전공의 미달로 상위연차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는 악순환을 교수들이 자진해 당직을 서며 개선했다"면서 "2022년 지원은 운이 좋아 정원을 모두 채웠지만 다음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흉부외과 전공의 확보를 위한 수련병원들의 정성은 지극했다.
■부산대 흉부외과, 전공의 우선 불변의 수련스케줄 "의국 회식 폐지"
부산대병원 흉부외과는 2014년부터 2022년까지 2명 정원에 1명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흉부외과는 외과계 중 가장 낮은 지원율(39.6%)을 보여 전공의 1명이 귀한 존재이다. 부산대병원은 중증질환 중심 흉부외과 수련과정을 일차의료 중심으로 쇄신했다.
심장과 폐, 에크모 등의 수련 비중을 낮추고 말초혈관질환을 담당하는 정맥류 시술을 수련과정에 추가했다. 흉부외과 수련 4년 후 써 먹을 게 없다는 젊은 의사들의 입장을 반영해 개원에 필요한 실제 술기로 특화시킨 셈이다.
전공의 지원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젊은 MZ세대의 워라벨에서 극대화됐다.
많은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15일 연차를 2주 사용한다면, 부산대병원은 주말을 제외시킨 3주 사용으로 개선해 원하는 시기에 장기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흥미로운 점은 불변의 수련 스케줄이다.
연차별 수련 스케줄이 환자 발생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공의들이 예측 가능하고 해당 수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전공의 병가 등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심장과 폐, 말초혈관 등의 기초과정과 심화과정을 계획대로 유지하고, 응급 상황 발생 시 교수들이 전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문의 시험을 준비 중인 4년차 전공의는 "지난 4년간 부산대병원 흉부외과 수련은 교수님들의 배려 덕분에 편했다. 전문의 취득 후 개원과 봉직은 야생인데 수련기간보다 힘들어질 것 같다"며 교수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부산대병원 흉부외과는 의국 내 회식 문화를 폐지했다.
전공의들을 위한 자리라고 하지만 교수들과 회식은 전공의 입장에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11명의 모든 교수들이 의국 회식을 하지 않기로 했다.
흉부외과 이호석 과장은 "전공의들에게 심장과 폐 등 중증질환 수술은 수련과정일 뿐이고 실제 필요한 것은 개원과 봉직에 필요한 말초혈관 질환"이라며 "전공의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고 워라 벨에 입각한 수련으로 개선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들 논의와 설득 작업을 거쳐 기존 관행과 관례를 개선해 전공의를 위한 의국 문화로 바꿨다"면서 "현 전공의 4명 모두 여자 전공의인데 이번에 지원한 전공의는 남자 전공의이다. 남자 전공의를 위한 별도 당직실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전남대병원 흉부외과, 5년째 정원 확보 "관례 타파, 전공의 존중"
전남대병원 흉부외과는 전공의 전담 교수를 두고 전공의들에게 공을 들이고 있다.
그 결과, 2018년 이후 2022년까지 5년째 정원 1명을 모두 채웠다. 전남대병원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전공의 정원 '0명' 행진을 이어간 수련병원. 교수들은 수련교육에 선택과 집중을 위해 2018년부터 전공의 정원을 2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전공의 지원율 제고를 위해 전공의법 주 80시간 규정보다 엄격한 주 70시간으로 내부 룰을 정했다. 수련할 때 빡세게 일하고, 쉴 때 확실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련시간 축소에 따른 술기 부족은 시스템으로 해소했다. 전공의들은 모든 수술에 참여해야 한다는 관례를 타파하고, 일주일에 참여하는 수술 시간을 조정해 술기의 집중력을 높였다.
당직은 한 달에 10회를 넘지 않도록 하고, 연차 휴가는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당직 스케줄을 조정했다.
이와 함께 흉부외과 수가가산에 따른 복지부의 권고안을 초과한 전공의 급여비 지급과 전문서적 구입비, 학회 참석 모두 의국에서 지원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 해외학회 참여를 4년 수련기간 중 1~2회로 확대해 항공료와 숙박비를 전액 지원하며 전공의들의 학술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전남대병원 역시 전공의들의 미래 불안감을 반영해 개원과 봉직에 대비한 시술을 수련과정에 반영했다.
전남대병원은 심장수술과 중환자 에크모 수련에, 화순전남대병원은 일반 흉부외과 질환에 집중 수련하는 방식을 취했다. 흉부외과 전공의들은 1년에 8개월은 전남대병원에서, 4개월은 화순전남대병원에서 다양한 수술과 시술 과정을 경험하도록 한 셈이다.
10년 전부터 8명의 흉부외과 교수들이 당직을 서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필요할까.
흉부외과 김도완 교수(의무장)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사라지면 흉부외과의 존재 이유가 없다. 전남대병원 교수들이 당직 불구하고 연 심장수술 350례, 폐 수술 300례, 에크모 100례를 이어가고 있다. 환자를 위한 흉부외과 의사의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 전공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도완 교수는 "전공의는 교수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동료 의사로 교수들의 인식은 오래 전에 바뀌었다"면서 "젊은 의사들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꼰대이다. 전공의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문화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