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학회 산하 학회 중 대한혈액학회가 이처럼 주목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아이러니한 상황 중의 하나다.
완치자의 혈액에서 채취한 항체를 대량으로 배양해 이를 코로나19 바이러스 치료제로 활용하는 항체 치료제는 물론, 감염 후 발생하는 혈전까지 모두 피, 즉 '혈액'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혈액학회는 이제 코로나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전문가 단체가 됐다.
문제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백혈병, 혈액암 유발 주장까지 '큰 목소리'들이 지속되면서 되레 혈액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가려버리게 됐다는 것.
일각에선 접종이 백혈병을 유발한다는 급진적인 주장이나 그 인과관계를 부정했다는, 혹은 그 반대의 이유로 '못 믿을' 의사로 매도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무엇보다 과학적 근거에 바탕한 학술적인 논의의 장이며, 이런 논의를 통해 의학 발전을 견인하는 학회의 역할이 팬데믹 시대에는 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1월부터 임기를 시작한 김동욱 혈액학회장(의정부 을지대의료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을 만나 중점 추진 사업 및 대국민 소통과 같은 학회의 공익적 활동 계획에 대해 들었다.
▲학회장으로 올해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학회 현안은?
대한혈액학회는 다른 학회와 비교해서도 굉장히 유서깊은 학회다. 58년 태동해 약 65살 정도 됐다. 1세대 임원분들 중 돌아가신 분들도 있다. 역사가 쌓인 만큼 시스템이 체계적이고 탄탄하다고 자부한다. 다만 조금 더 나은 발전을 위해 말하자면 학회 위상에 맞는 컨텐츠 내실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혈액 분야 연구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학회로는 유럽, 미국 혈액학회, 덧붙이자면 일본 혈액학회까지 세 곳 정도다. 국내 연구진의 개인 역량은 세계적이지만 기초 연구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쉽게 말해 미국, 유럽, 일본의 혈액학회는 기초과학자와 생명공학자, 의사들 세 주축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임상의학자들이 과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하면 그 연구의 폭이 크고 깊을 수밖에 없다. 공동 연구에 아낌없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에서 혈액학회가 열리면 3~5만명이 온다. 그중 80%는 의사가 아닌 과학자다. 혈액 분야에서 있는 의사로서, 혈액학회장으로서 이런 풍토가 부럽다.
4~5일간의 미국 학술대회 기간동안 5천편의 연구들이 나온다. 연구 편수와 같은 양뿐만 아니라 질적 수준까지 담보돼 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지점이다.
아직 우리나라는 의학회라고 하면 의사만의 '전유물'로 여기는 관념이 있다. 연구의 질적, 양적 수준의 진일보를 위해서라면 의사와 과학자들이 함께하는 그런 연구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임기 동안 인식 전환을 위해 노력하겠다.
▲1년의 임기는 짧은 편인데 중점 추진 사업 계획은?
앞서 언급했듯 학회의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하는 작업에 전념하고자 한다. 임상의사들만 있어서는 좋은 연구가 어렵다. 그런 토대를 만들기 위해 정관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학회 정관상 의사만이 정회원으로 인정된다. 혈액 분야에서 무균치료 등 간호사의 역할이 큰데 간호사는 준회원의 역할에 머무른다.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 과학자 외에 간호사들도 혈액학회의 중심축을 구성하고 있다. 학회의 국제화를 위해서라면 기초과학 연구에도 충분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문판 학술지 지 'Blood Research'를 SCI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이 있다. 연구자들 입장에서 같은 영문판이라면 다른 곳에 내겠다는 생각이 없잖아 있다. 학회지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다행히 국내에도 좋은 벤치마크 사례들이 있다. 대한암학회의 학술지는 전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다. 임원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60년이 넘는 연혁에 맞게 학술지의 위상 강화도 추진하겠다.
마지막으로 재단 설립이 있다. 학회가 커지면 재단을 만들어야 연구 투자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다. 전임 임원진뿐 아니라 7~8년전부터 재단을 설립해서 재정에 숨통을 틔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두 학회의 기초 체력을 튼튼하게 하는 방안들이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학회 차원에서 집중 연구하고 싶은 연구 주제나 학술대회에서 나루고 싶은 주제가 있는지?
혈액학회는 산하에 12개 질환별 연구회와 6개 지역별 지회를 두고 있을 정도로 연구회가 활성화돼있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울산과학기술원과 함께 연구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5년간 28억원을 지원받아서 약물 투약 중단 후 만성골수성백혈병의 재발 기전이나, 초기부터 약제를 병합 사용했을 때의 예후 비교 등 그런 연구를 하고 있다. 기초과학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여서 더 의미있는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상의학 중 혈액 쪽은 발전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혈액학회가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다. 그럴려면 임상의만으론 안 되고 기초생명과학자와 함께 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질환 특성상 항체 치료제나 혈전 등 혈액과 연관성이 많다. 내원 환자들에 대한 접종 이슈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항체 치료제는 원래 혈액학쪽에 이미 있었던 개념이다. 골수 이식 전후에 면역항체를 주고 면역력을 정상화한 뒤에 하는 방법들이 있었고 이를 팬데믹 상황에서 활용한 것이다.
현재 대한암협회 집행이사, 유럽백혈병네트워크 국제표준지침 제정위원회 패널위원, 의학한림원 코로나19 백신안전성위원회 임상위원, 을지대학교 백혈병오믹스연구소장 등을 맡고 있다.
특히 의학한림원에서 백신안전성위원회가 발족이 됐는데 혈액/면역쪽 소분과위원장으로 백신과 혈액질환의 인과성을 분석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학계에선 의학적으로는 코로나19 백신과 백혈병 유발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지만 의학한림원은 아직은 자료를 정리 중이라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다.
개인 입장을 전제하고 말하자면 백신 접종 후 생긴 이상반응에 대해서는 광범위하게 인과성을 인정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의정부을지대병원 혈액암센터 내원 환자들도 백신 맞아야 하는지 이 부분을 많이 질문한다. 상담실에도 그런 문의가 많다.
환자 중에는 백혈병이며 항암요법 중이니 더 악화될까 불안해서 백신 접종 유예 소견서를 써달라는 요구를 많이 한다. 백신 맞는게 개인 질환 정황상 불리할 수 있으니까 소견서 써줄 수 있냐고 하는데 유예는 내 권한으로 안 된다. 백혈병 환자에게는 자칫 한 번의 접종으로도 상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에 백신접종이 어려운 중증환자들에게는 백신패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소견서를 현장 의사의 권한으로 맡겨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혈액학회가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지속적으로 백신접종후 백혈병 유발 주장이 나오는데 전문가로서 견해는?
많은 쪽에선 인과관계가 없다고 하지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비이락처럼 기존에 있던 질환이 접종 후 우연히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접종으로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생긴 다음 시간이 지나면서 백혈병에 직접 연관된 유전자 스위치들을 작동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과학에서 인과성을 따지는 방법이 있지만 그렇다고 0과 1처럼 딱 떨어지는 그런 개념은 아니다. 인과관계를 평가할 때 인과관계가 명백함부터 상당히 확실함, 가능성이 있음, 가능성이 적음, 관련성이 없음까지 5단계로 나눈다.
임상치료에 따른 이상반응을 보수적으로만 평가하면 실제 관련이 있을 수 있는 낮은 가능성의 이상반응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mRNA 백신도 처음 대규모로 접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게 부작용을 인정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말하기 어려울 땐, 피해자 입장이나 환자 입장에서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