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의료기관의 한 해를 결정짓기 위한 수가협상이 어김없이 4개월 앞으로 돌아왔다. 건강보험 가입자와 공급자는 올해 진행할 수가협상에서는 최신 자료를 최대한 반영하자는 데 합의점을 찾았다.
건강보험공단 이상일 급여상임이사는 25일 전문기자협의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올해 수가협상 운영 계획을 공개했다.
지난해 5월 수가협상을 끝낸 후 건보공단은 요양급여비용계약 제도발전협의체에서 SGR(Sustainable Growth Rate, 지속 가능한 진료비 증가율) 모형의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SGR 모형은 수가 인상률을 결정하는 데 적용되는 모형이다. 적용 기준 시점이나 사용된 거시 자료 등에 따라서 환산지수 값의 격차가 발생하는 등 한계가 있다며 수가협상 때마다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건강보험 가입자, 공급자, 전문가, 정부로 구성된 제도발전협의체는 당장 올해는 SGR모형을 쓸 수 밖에 없다는 점에 공감하며 두 가지를 개선하기로 합의했다.
하나는 의료물가지수(MEI) 비용가중치를 계산할 때 3차 상대가치 회계자료(2017년)를 활용하기로 했다. 내년에 이뤄질 3차 상대가치 개편 과정에서 쓰이는 데이터를 수가협상에도 반영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2010년도 이전 데이터인 2차 상대가치 회계자료를 썼다.
진료비 차이 보정계수(UAF)를 산출할 때는 진료비 누적 기간을 기존 14년에서 10년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비교적 최근의 정책 변화가 반영될 수 있다.
이들 두 가지 개선점을 반영하면 건보공단이 협상 과정에서 제시하는 수가인상률과 실제로 계약하는 인상률의 차이가 줄어들 것이라는 게 건보공단의 생각이다.
건보공단은 협의체에서 도출해낸 개선점을 이달 말에 있는 재정운영위원회, 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잇따라 보고한 후 5월 수가협상에서 활용할 예정이다.
이상일 이사는 "기존 모형을 완전히 바꾸기는 힘들기 때문에 제도발전협의체에서 단기적 개선방안을 일단 도출했다"라며 "계획에 따르면 건강보험 재정은 흑자가 될 것 같은데 가입자와 공급자의 의견차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클 수 있기 때문에 올해도 (수가협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장기화로 절약된 건보재정을 수가협상에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는 다각적 검토 결과를 기반으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불법개설기관 부당청구 적발액, 수가인상 투입재정보다 더 많다
건보공단은 한해 동안 불법 개설 요양기관이 부당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이 수가협상에 투입되는 재정 수준과 사무장병원 근절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예정이다.
올해 수가 인상에 투입된 건강보험 재정 규모는 1조600억여원. 지난해 적발한 불법개설기관이 타간 요양급여비는 1조5000억원(228곳)에 달한다.
이 이사는 "사무장병원으로 새어나가는 건강보험 재정은 전체 의료계를 대상으로 하는 수가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재정 누수를 막아야 수가인상의 여지도 있다. 의료계도 사무장병원 근절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건보공단은 불법개설기관 진입 차단을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 법 개정안 통과에 주력할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는 의료기관개설위원회 기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 특사경법 제정 법안이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저조한 징수율 극복을 위해 은닉재산 적발을 통한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추진하고 고액체납자 현장징수반 설치도 확대 운영한다.
이 이사는 "특사경 권한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천하고 관할 검찰청 검사 지휘를 받도록 하고 있어 임의적으로 인력과 수사범위를 확대할 수 없다"라며 "수사대상은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 약국으로 제한하고 있어 의료계의 권한 오남용 우려를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계와 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해 나가면서 특사경 법안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급여 보고 의무화, 의료계에도 긍정적 작용할 것"
의료계의 또 다른 현안인 '비급여 보고 의무화'도 건강보험공단 급여상임이사의 소관이다. 아직 비급여 의무 보고 대상 항목, 범위 등에 대한 고시가 나오지 않았지만 건보공단은 일찌감치 임시조직을 구성한데 이어 올해는 '비급여관리실'을 설치해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이 이사는 "비급여 보고 의무화는 의료계에도 상당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척추 MRI 급여화 과정에서 건보공단이 계산한 재정 소요 예측액은 의료계 예측과 3배나 차이가 난다. 이런 격차를 줄이려면 비급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적정 수가를 설정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부적인 비급여 보고 내용과 항목이 결정되면 바로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의료기관 행정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급여 자료 자동 제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요양기관 청구 프로그램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라며 "필요하면 현장에 나가서 지원하는 활동도 생각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