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calTimes
  • 오피니언
  • 이슈칼럼

라면은 되고 샴푸는 안되는 식약처의 이중잣대

강윤희 위원
발행날짜: 2022-02-07 05:45:25 업데이트: 2022-02-10 09:25:19
강윤희 전 식약처 심사위원

필자가 식약처에서 일할 때 날마다 아침에 확인하는 유용한 자료가 있었다. 타국가 규제기관에서 전날 취한 조치와 이에 대한 식약처의 대처를 요약한 자료인데, 이를 잘 살펴보면 안전성 관리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았기 때문에 꼼꼼히 챙겨보았다.

그런데 의약품/백신/의료기기 등에 대한 안전성 조치는 식약처가 해외 규제기관의 조치를 거의 그대로 copy & paste 를 한다. 왜냐하면 이런 안전성 정보는 임상적이고, 정성적(clinical & qualitative) 조치이기 때문에 다시 검토하려면 안전성 전문가가 식약처에 존재해야 하는데,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에 그대로 베껴와서 시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선진 규제기관이 열심히 하고 있는 안전성 조치를 copy & paste 라도 하니 그나마 다행인 것이다.

다만 임상시험의 안전성 관리는 선진 규제기관도 부실한 측면이 많고 국내에서만 진행되는 임상시험도 많기 때문에 임상시험을 많이 하는 우리나라는 반드시 잘 해야 되는 부분인데 식약처는 임상시험의 안전성 관리의 중요한 부분인 중앙 IRB와 DSUR 검토를 외주 주겠다고 하니 할 말이 없을 뿐이다. 이는 필자의 지난 칼럼(2022.1.24. 식약처 '신속'에 미쳐 정신줄 놓다)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런데 필자가 이상하게 여긴 것은 식품/화장품 등에 포함된 유해성분에 대해 타국가가 취한 조치에 대한 식약처의 반응이었다. 이 분야는 어떤 임상적인 검토가 아니라 유해성분의 허용 기준을 초과했는가 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는데, 해외에서는 허용 기준을 초과해 판매가 금지되고, 허가가 취소되는 제품들에 대해서 식약처의 판단은 '국내 기준에는 부합하므로 추가적인 조치는 필요하지 않음'이 많았다. 그래서 필자는 속으로 '도대체 우리나라는 무슨 당나라 기준을 사용하길래 다 국내 기준에는 부합이야~' 생각하면서 국내 기준이 선진국 기준에 못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었다.

최근 식약처는 국내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개발한 모다모다 샴푸에 포함된 THB 성분에 대해서 유럽소비자안전성과학위원회(SCCS) 평가 보고서를 근거로 잠재적 유전독성이 있으므로 사용금지목록에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피부감작성 물질이라는 이유도 있는데, 이 제품이 이미 150만여개가 팔렸고, 그동안 의미있는 피부감작성 부작용이 있었다면 진작에 문제가 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real world data 에 따라 피부감작성 부작용은 의미 없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식약처는 2020년 시판후 약물감시에 real world data를 활용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식약처는 THB의 안전성에 대해서 2019년 4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20개월간 평가했다고 하는데 식약처가 안전성 정보 검토를 별도의 연구도 없이 이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한 사례를 본 적이 없는 바 '왜 그 때 하지 않고, 하필 지금?' 이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THB에 대해 SCCS가 내린 결론도 잠재적 위험(potential risk)이지 입증된 위험(identified risk)이 결코 아니며, 미국, 일본 등은 이 성분에 대해서 허용하고 있다. 필자가 예전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입증된 위험에 대해서는 약간의 과대평가가 안전성 관리에 도움이 되지만,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는 과대평가를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실제 존재하지 않는 위험 평가로 산업체에 해악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필자는 식약처에서 근무할 때 한 항암제의 임상시험계획서를 검토하게 됐는데, 비임상시험(동물시험 등)을 검토한 담당 공무원은 해당 약물이 개를 대상으로 한 시험 중 HED(human equivalent dose) 미만에서 경련이 발생했기 때문에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승인하기 어렵다고 했다(안전성을 중요시한, 필자가 존경하는 공무원이다). 필자도 일견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관련 약물성분의 연구결과들을 찾아보니, 개발사도 이 문제를 인지해 개 뿐만 아니라 쥐, 오리, 닭 등 10개 가까운 다양한 동물에서 경련 발생 여부를 관찰했고, 오직 개에서만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개발사는 그러므로 경련의 부작용은 종에 따른 특이성이 있으며,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에서는 미량으로부터 투여를 시작하고 경련에 대한 특별한 안전성 관리를 할 것이라는 내용이 계획서에 포함돼 있었다. 필자는 이 임상시험계획서를 승인했으며, 임상시험은 경련의 발생 없이 임상3상까지 안전하게 잘 진행됐다. 모다모다의 개발자도 유전독성에 대한 우려를 무시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적극 자사 제품의 유전독성을 제대로 시험하고 있으니 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식약처의 판단을 유예해 달라는 것뿐이다. 그런데 안전성 검토에 20개월씩이나 쓴 식약처가 고작 몇 개월을 더 기다리는게 불가능해서 이렇게 갑질을 할 일인가!

그럼, 식약처는 샴푸에 대해서는 유럽의 기준을 수용하면서 왜 라면에 대해서는 유럽의 기준을 수용하지 않는가? 유럽은 올해 한국산 라면에 대해서 2-클로로에탄올 성분에 대한 자료 요청을 했는데, 농심, 삼양, 팔도 3사는 모두 기준을 충족시키는 해당 자료가 없어서 유럽 수출이 어렵게 됐다(후에 식약처의 행정 노력으로 적용일이 연기됨). 이는 유럽은 2-클로로에탄올 성분을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럽은 작년 국내 한 라면회사의 제품 내 2-클로로에탄올 성분이 유럽의 기준보다 100배 이상 검출돼 퇴출시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식약처는 이전까지 아예 2-클로로에탄올 성분에 대한 규정이 없었으며 작년에야 부랴부랴 기준을 만들었는데, 유럽 기준인 0.05ppm(에틸렌옥사이드 검출량에 합산)보다 600배 높은 30ppm 으로 기준을 설정했다. 그러면서 '라면에서 검출되는 용량은 인체에 해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도대체 이런 무모한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머리 감는 만큼이나 라면을 즐겨 먹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럽에서는 발암물질로 규정한 유해성분이 함유돼 있는 라면을 계속 먹어왔다는 말인가? 왜 식약처는 라면에 들어가는 발암성분에 대해서는 유럽의 600배나 높은 기준을 적용하면서 '인체에 해를 줄 정도는 아니다'라는 근거 없는 얘기를 하고, 샴푸에는 유럽의 지나치게 높은 염모제 기준을 검증도 없이 적용하는가? 유럽의 기준을 적용하려면 일관성이라도 있기를 바란다.

P.S. 필자는 칼럼을 마무리하면서 모다모다 샴푸를 주문했다. 그리고 라면에 들어가는 2-클로로에탄올 허용 기준이 유럽의 기준과 동일한 기준이 될 때까지 라면 금식을 선언한다.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