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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예과 폐지가 아니라 도리어 활성화해야

강윤희 위원
발행날짜: 2022-02-21 08:47:46 업데이트: 2022-02-21 08:48:28
강윤희 전 식약처 심사위원

의예과를 폐지되고, 본과 6년제로 전환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전환의 당위성은 의예과 2년은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고, 일본도 1975년부터 예과를 없애고 본과6년으로 바꾸어, 의예과를 운영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이유가 교육제도를 바꾸는 근거라는게 부끄러운 건 나뿐인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고 하면서 또 다시 일본의 제도를 따라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나라 제도 따라한답시고 멀쩡한 (2+4) 제도를 접고, (4+4) 의전원 제도 도입했다가 실패한게 엊그제다. 의전원 제도같이 사회 시스템을 병들게 하면서 철저하게 실패한 교육제도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또 어떤 구체적인 준비도 없이 예과를 없애겠다는건 도대체 무슨 근자감인가.

필자는 의예과 89학번이다. 의예과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일반화학, 유기화학을 해당 과 전공교수님들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일반화학을 너무 좋아해서 문제풀이집이 있었지만 머리를 쥐어짜면서 스스로 풀었고, 기쁘게 시험장에 들어갔으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감독하시는 교수님께 '교수님, 제가 어제밤까지 모든 문제를 풀었는데 전혀 기억이 안납니다'라고 하소연하니, 교수님은 '몇 번 풀었는데? 화학은 3번 이상 풀지 않으면 기억이 안나'라고 대답하셨던 기억이 난다. 양파 껍질을 벗겨 세포분열을 관찰하고, 쥐를 해부한 후 심장의 전도를 관찰하고, 보고서는 조교의 권고대로 필자는 한 페이지를 제출했는데 동기들은 수십페이지를 제출해서 '얘네 도대체 뭐야' 짜증이 났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어를 들으면서 경상도 사투리로 불어를 하는게 얼마나 재미진 일인지를 알게 됐고, 종교학, 심리학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나라는 인문학 강의에도 토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체육시간에는 현대무용을 배웠는데 우리 조 한 동기의 눈에서 렌즈가 빠지면서 동작을 헤매는 통에 체육수업에는 없다는 C를 받았던 유쾌한 기억도 있다. 학교 축제 때는 함께 김밥을 말고, 순대를 삶고, 파전을 열심히 부쳤으나 10만원 정도만 남아 자영업자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합창 동아리에서 합창을 하며, 음악을 듣는 것도 좋지만 함께 부르면 더 행복하다는 것을 배웠고, 기독교동아리에서 내 인생을 바꾼 성경을 공부했다.

다양한 타과의 학생들과 넓은 교정을 함께 걷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데모를 하고 최루탄을 마시면서 필자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됐고, 인간애를 갖춘 성인이 됐다. 이런 경험은 결코 본과 교육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필자가 약대 교육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식을 여러 번 갖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필자가 식약처에서 일할 때 약리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여러 번 식약처의 약대 출신 주무관들에게 관련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대답이 '학생 때 배웠는데 기억이 안난다' 였다. 예를 들어 '잘 기억이 안나지만 알아보고 알려드릴께요.' 이런 긍정적인 답을 들은 적이 없다. 이런 상황은 제약회사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심각하게 느낀건 약무를 할 때의 attitude 인데 솔직히 필자는 환자 중심의 attitude를 갖추고 약무를 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저 일로서 일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런 분이 있기는 하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물론 이건 필자의 제한적인 경험 때문일 수도 있으며 그러기를 바란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약대 교육의 문제점은 예과 과정이 없이 거의 바로 전문커리큘럼으로 들어가고 커리큘럼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서울대 약대 커리큘럼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야말로 살인적이라고 한다. 내용이 반복되지도 않는 것 같다. 위에 화학 교수님의 말처럼 중요한 지식은 3번 이상 반복을 해야 머리에 남는데 말이다. 학생들은 한 과목을 뇌에 채웠다가 빨리 비우고 다른 과목의 지식으로 채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기억이 안나는게 당연할 것이다. 결국 약대에 들어오는 유능한 학생들이 예과 과정도 없이 전문 커리큘럼의 무한 루프에서 지치게 되고, 결국은 신약 개발자와 같은 연구자의 길로 들어가는 사람이 적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약대여, 그대들도 약예과를 만들기를 바란다.

훌륭한 전문가는 결코 지식의 주입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지식은 구글에, 유튜브에 넘쳐난다. 의학적 최신 지견도 종설(review article) 하나 잘 골라서 읽으면 대부분 습득할 수 있다. 지식을 대체하는 AI는 언젠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과학자로서의 기본 소양, 종합적인 사고방식, 인간에 대한 존중과 이해는 지식이 아니라 의예과적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예과적 경험이야 말로 필자가 조금이라도 낭만(여기서 낭만이란 김사부가 말했듯이 사람을 살리는 낭만을 의미함)이 있는 의사가 되게 해주었다고 믿는다. 부디 공부에 이미 지쳐서 의대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의예과의 시간을 통해 자유롭게 원하는 학문을 하면서 스스로를 채우고 자랄 수 있는 시간을 주자. 쉬고 놀게 해주자. 그러면 그들은 더 멋있는 의사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칼럼은 개인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