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자격을 드러내지 않고 개원한 의원이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6000곳을 돌파했다. 절반 이상은 외과와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직격타를 맞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전문의 자격을 뒤로하고 의원을 개설하는 비중이 눈에 띄게 늘었다.
메디칼타임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18~2021년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개설자 전문과목별 현황'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했다.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은 말그대로 전문의 자격을 딴 이후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고 개원한 형태를 말한다.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은 2018년 5781곳에서 4년 사이 316곳 늘어나면서 지난해 6000곳을 돌파했다. 지난해 기준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은 전체 의원 중 18%를 차지하고 있다. 이 비율은 4년 내내 큰 변화가 없었다. 즉, 전문과 특성을 살리지 않고 피부미용 등의 진료를 하는 의원이 전체 의원 5곳 중 1곳 꼴인 셈이다.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중 절반 이상인 3147곳은 가정의학과와 외과 전문의였다. 가정의학과 의사가 개원한 의원이 2135곳으로 가장 많았고, 외과 의사가 개설한 의원이 1012곳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서 산부인과가 696곳, 비뇨의학과 446곳, 흉부외과 253곳 순이었다.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 강태경 회장은 "가정의학과는 일차의료 진료 말고 다른 진료도 많이 하는데 피부미용 진료로 방향을 정하게 되면 가정의학과 간판을 다는 게 쉽지는 않다"라며 "긴 통계를 놓고 보면 최근에는 젊은 의사를 중심으로 가정의학과 간판을 내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정의학과는 일차의료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학술대회를 하더라도 1차 진료 관련 내용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한다"라며 "가정의학과 의사뿐만 아니라 타과 의사의 참여도 많다 보니 전문과 간판을 달지 않은 가정의학과 의사까지 끌어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부분은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전문과 간판 포기하는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의사들
특히 저출산 영향권에 있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선 산부인과 의사들의 전문과목 미표시 의원 개설 현황을 보면 한 자릿수 단위로 늘다가 2020년과 2021년 사이 23곳이 갑자기 늘었다.
2018년 666곳에서 2019년 672곳으로 6곳 증가, 2020년 673곳으로 1곳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폭이 커진 것.
산부인과 전문의인 대한개원의협의회 김동석 회장은 "저출산 등의 이유로 경영이 안되니까 산부인과라는 전문과목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여성의학과로 명칭을 바꾸려는 것도 산부인과 문턱을 낮추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코로나19 상황에서 분만할 의사가 없어 길거리 분만 이야기가 나오는 게 그만큼 산부인과 의사가 생존할 수 없는 의료환경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도 전문의 자격을 뒤로하고 일반 의원을 개설하는 비중이 늘고 있었다. 지난해 전문과목을 표시하지 않고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개원한 의원은 243곳으로 전년도 208곳 보다 35곳 늘었다. 2019년에는 전년보다 13곳, 202년에는 21곳 늘어난 것보다는 증가폭이 커졌다.
소아청소년과 개원가의 비관적인 분위기는 그동안 급여비 매출 증감률 등 각종 통계에서도 충분히 확인이 가능했다. 레지던트 모집 결과에서도 대표적인 기피과로 자리잡으면서 소청과의 현실이 증명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일찌감치 분위기를 감지하고 소아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 진료, 피부미용 등 소청과 의사들이 살아남기 위한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학술대회에서 소아청소년 환자 진료 전문성 강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만성질환 관리, 초음파 등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온라인 연수강좌에서는 고혈압과 고지혈증 처방, 진료실에서 흔히 보는 성인 위장관 질환, 비만진료 등 성인 환자 진료에 대한 강의가 주를 이뤘다. 소청과 전문의면서 일반 진료를 하고 있는 원장이 진료영역의 효율적 확장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소청과 전문의이지만 '의원' 간판을 달고 다양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한 원장은 "탈 소아청소년과 이야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코로나19가 가속화시켰을 뿐"이라며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영역 확대를 통해 살아남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