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진료지원인력, 일명 PA 양성화를 위한 타당성 검증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젊은의사들이 '원칙'을 앞세웠다. 의사가 할 일은 의사가 직접 할 수 있는 환경을 과감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0일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보건복지부 진료지원인력 타당성 검증 사업' 대응에 대해 논의했다. 임총에는 약 40명의 전공의 대의원이 참여했다.
복지부는 진료지원인력 타당성 검증 사업에 참여할 의료기관을 11일까지 모집했다. 일선 의료현장에서 소위 PA라고 불리는 인력이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함이다. 복지부는 고려의대 예방의학과 윤석준 교수팀의 연구용역 중간 결과를 바탕으로 진료지원인력이 의사를 대신할 수 있는 의료행위를 제시하고 있다.
복지부는 주요 쟁점 행위를 ▲건강 문제 확인 및 감별 ▲검사 ▲치료 및 처치 ▲수술 ▲마취 ▲중환자관리 ▲처방 및 기록 ▲환자평가/교육 등으로 크게 나누고 각 항목에 따라 세부 행위를 분류했다.
대전협 임총에서는 특히 '처방 및 기록' 부분이 주요 쟁점 대상으로 떠올랐다.
복지부는 전문의약품 처방, 위임된 검사 및 약 처방, 진료기록 작성 또는 오입력에 대한 수정 업무에 대해 원칙적으로 의사가 해야 하는 업무이지만 다수의 진료지원인력이 수행 중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전협 강민구 부회장은 "의료법상 전문의약품 처방이나 진료기록 작성은 반드시 의사가 수행해야 하는 행위"라며 "다수의 진료지원인력이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범사업에서 허용한다면 그 자체가 의료법 위반의 소지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지병원 전공의 대표도 "다수의 대학병원에서는 특히 전공의가 없는 과에서 진료와 처방 의무기록을 일부 진료지원인력이 하고 있다"라며 "외과나 특정 마이너 외과계열 등에서는 진료지원인력이 교수 아이디로 직접 오더를 내고 의무기록을 작성하고 있다. 처음 채용을 할 때부터 의료진과 진료지원인력 모두 동의하고 있는 상태"라고 현실을 전했다.
이어 "간호사가 자신의 아이디로 오더를 내는 것은 불법이기 때문에 의사의 아이디를 빌려 쓴다는 것은 병원도 잘 알고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내과 전문의를 딴 대전협 한 총무국원은 수련받을 때의 현실을 공유하면서 의사가 해야 할 일은 직접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국원은 "내과 소속 진료지원인력이 5명인데 이들 모두 스태프 아이디를 빌려서 처방을 내고 있다"라며 "입원 환자 진료를 누가 할 것인가를 결정할 때가 다가왔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그동안은 전공의가 굉장히 높은 업무 강도를 감당하면서 입원환자를 진료하고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받는 식으로 의사 사회가 돌아가고 있었다"라며 "전문의를 따고 나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이 점점 감소하면서 전공의 과정 중 이 모든 고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논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처방과 의무 기록은 원칙적으로는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며 "아무리 힘들어도 전공의가 다 해야 하고, 그렇다면 정부는 저수가 제도 탈피 등 수련 이후 전공의들이 받을 수 있는 보상을 약속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반대로, 진료지원인력을 양성화한다면 전공의도 근로기준법에 따라서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도 더했다.
대전협 집행부 역시 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의사가 직접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여한솔 회장은 "원칙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감수되는 피해 상황은 정부, 병원 등이 함께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전공의가 모두 떠맡는 것은 무리"라며 "이 문제를 피해 가거나 덮으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잠깐 편할 수는 있겠지만 부메랑으로 돌아와 우리의 목을 죌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조건 반대는 무리수, 유연한 시선 필수 지적도
그러면서도 보다 유연한 시선을 갖고 정부와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화순전남대병원 전공의는 "의사로서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하면서도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모든 안에 대해 반대를 해서는 안 된다"라며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다. 항상 열려서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도 필요하다"라고 제안했다.
전남대병원 전공의도 "전공의가 부족한 진료과는 분명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전공의 확보율에 따라 선택적 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진료기록 작성, 처방 등도 진료지원인력이 입력토록 한 후 담당 교수나 담당의 이름이 추가될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여 회장은 현재 대한의사협회 산하 무면허 특위에서 정부가 제시한 각각의 의료행위에 대해 대전협 입장을 꼼꼼히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의사가 해야 할 일은 꼭 의사가 해야 한다"면서도 "환자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얼마든지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심전도가 대표적인 예인데, 심전도를 공부하면서 해석하는 게 의사가 할 일이지 6개 리드를 붙이고 하는 그 자체가 환자에게 위해가 가지 않는다고 한다면 업무를 나눠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편하고 싶어서 타인에게 아이디를 빌려주는 행위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이런 행태가 만연하고 반복되기까지 수많은 선배들, 수련병원 교수, 경영진에 잘못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대전협은 임총에서 대의원 의견을 모아 잘못된 관행이 난무하는 의료현장을 바로잡겠다는 선언을 동시에 했다.
대전협은 "무자비한 대한민국의 의료인 갈아넣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선배 의사와 전공의는 환자를 결코 외면할 수 없었으며 이 과정에서 진료보조인력의 잘못된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었다"라고 우선 인정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부조리를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해 총회에서 뜻을 모았다"라며 "열악한 수련환경 속에서 묵묵히 환자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지켜온 동료 전공의를 위해 불법적 관행이 난무하는 의료현장을 우리가 먼저 나서서 바로잡을 것을 선언한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진료지원인력 시범사업의 행방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