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글래스를 통해 담췌관 치료의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대장암의 검진 방법을 물으면 십중팔구 대장내시경을 떠올린다. 그만큼 사람들의 인식 속에 대장내시경은 대장암 검진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는 뜻. 이런 상식도 대장조영술이 대세였던 30년 전에 '먼 미래'에 불과했다.
대장 속을 실제로 들여다보는 내시경 기술이 단기간에 대세가 된 것은 그만큼 몸 안 장기를 직접 확인하고픈 의료진의 열망이 컸다는 방증. 장님 코끼리 만지기와 같은 조영술의 답답함이 내시경을 통해 사라지면서 작은 용종과 암까지 발견하는 등 진단율이 비약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대장 분야에서 확인한 '오래된 미래'가 췌장/담도에서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췌장 및 담도의 담석 혹은 암을 발견하는 일반적인 시술은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ERCP). 담관 및 췌관 내부에 조영제를 주입한 후 엑스레이를 찍는 ERCP는 간편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2차원 흑백 이미지라는 한계 역시 명확하다.
반면 최근 개발, 보급된 보스톤사이언티픽사의 스파이글래스(SpyGlass DS II)는 췌담관계의 내시경 시술을 진행하는 동안에 디지털 신호를 모니터로 전송해 담췌관 및 병변을 직접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어 미래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조심스런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임상 현장에서 스파이글래스를 활용하는 의료진의 평가는 어떨까. 2018년 아시아-오세아니아 췌장학회 학술대회에서 젊은 연구자상을 수상한 췌장 분야 명의 대전성모병원 박원석 교수를 만나 췌담도계 진료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요로나 편도 결석은 흔히 알려져 있는데 아직 담석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몸의 여러 장기나 부위에서 돌이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담즙은 지방 분해, 소화 등에 필요한데 담낭에서 보관되다가 담관으로 분비된다. 담즙이 농축돼 굳는 경우 돌과 같은 딱딱한 덩어리로 변하게 된다. 담석이 담관 등을 막아 통증을 일으키는 경우 제거가 필요하다.
▲국내외 담석증 치료 경향이 궁금하다. 환자의 연령대나 담석의 크기 별로 접근 방법이 달라지는지?
환자 연령에 따라 치료 가이드라인이 세부화 되지는 않았다. 치료 경향은 우선 ERCP를 시도해보는 편이다. 젊은 의료진들은 ERCP로 트레이닝을 받고 나오기 때문에 익숙하고 안정적인 시술법이다.
ERCP는 담도와 췌장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이용되는 표준 시술로 내시경과 엑스레이를 같이 활용한다. ERCP는 내시경을 담도와 췌관의 입구인 십이지장 유두부까지 진입시킨 다음 담관 및 췌관 내부에 조영제를 주입하고 촬영해 악성 종양, 담관 협착, 낭성 병변 및 담췌관석을 진단 및 치료한다.
담관 담석의 크기에 따라 접근법은 달라질 수 있다. 담석은 절대적인 크기가 없다. 사람에 따라서 직경 2cm도 쉽게 뺄 수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1cm짜리도 제거가 어려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1cm 안팎은 담석 제거기구인 바스켓 만으로 제거가 가능하지만 그 이상 거대 담석의 경우 담석이 나오는 길을 넓혀주는 유두부 절개나 성형(EST)이 필요할 수 있고 기계적인 쇄석술(EML)이나 유두부 거대풍선 확장술(EPLBD), 전기수압쇄석법(EHL)도 시행된다.
특히 거대 담석을 꺼낼 때 유두부를 확장하기 위해 거대풍선 확장술을 시행하는데 직경 16mm 이상으로 늘릴 때는 천공의 위험이 있다. 담석 제거를 위한 입구를 무한정 늘리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쇄석이 필요하다.
▲대전성모병원에 내원한 담석증 환자 구성 및 특징은?
환자 중 농업 종사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농업에 종사하는 어르신들은 통증이 있어도 참는 경우가 많아 담석이 거대해진 케이스가 종종 있다. 약 20%의 환자가 거대 담석인데 최근 시술한 경우 담석 직경이 3.5cm이었고, 고령 환자분 케이스 중에 가로 2cm, 세로 6cm의 담석을 본 적도 있다. 담석이 담낭이나 담관에 너무 꽉 낀 상황이라면 한번의 시술로는 어려울 수 있다. 쇄석기를 바로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면 2개월 간격으로 3번까지 제거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ERCP 시술은 내시경을 사용하는데 왜 별도의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한지?
ERCP를 '내시경적 역행성 담췌관 조영술'로 부르는 이유는 내시경의 크기 상 담도와 췌관의 입구인 십이지장 유두부까지 진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담관 및 담석 상황을 알기 위해선 조영제를 쓴 뒤 별도의 엑스레이 촬영이 필요했다. 엑스레이는 2차원의 평면이기 때문에 실제 3차원 이미지로 병변의 색, 구조를 살피는 게 어렵다. 2차원의 평면도를 기반으로 경험과 상상력을 더해 병변을 진단했다는 뜻이다.
반면 일회용 담도췌장경으로 불리는 스파이글래스는 실제론 카테터에 속하지만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내시경에 달린 '미니 내시경'으로 생각하면 된다. 기존 내시경이 진입하기 힘든 좁은 관을 3mm 내외의 이 미니 내시경이 들어가 해결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스파이글래스를 통해 직접 담관에 진입한 후 전기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빠른 시술과 퇴원이라는 장점이 있다.
▲기존 치료법으로도 담석 제거가 가능하다. 이와 대비되는 일회용 담도췌장경 치료법만의 장점은?
물론 스파이글래스 이전 기술로도 담석의 제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삶의 질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번의 시술로 제거가 어려운 거대 담석은 경피경간 담도경하 쇄석술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옆구리에 볼펜 정도의 구멍을 뚫어놓고 3주 정도 기다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환자들 중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고 무엇보다 경제적, 시간적 소모가 많다. 2~3번에 걸쳐 입원을 하고 제거 기구인 바스켓을 여러 개 써 비용 부담이 늘어나기도 한다.
반면 스파이글래스 단일 시술 비용이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2~3번 나눠 쇄석술을 하는 총 비용, 시간 소모를 고려하면 결국 서로 비슷하다. 스파이글래스를 통해 담석을 직접 보면서 쇄석하면 한번에 담석 제거를 끝낼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삶의 질적 측면뿐 아니라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바로 퇴원이 가능해 일상으로의 복귀 시점이 빠르다.
물론 스파이글래스가 담석에서만 효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담관암이 의심되는 경우에 조직검사가 필요한데 조영술을 통한 2차원 평면에서 병변 조직을 확인하고 타게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런 경우는 조직 검사를 해도 확진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담관암 의심 환자의 확진율을 높일 때 스파이글래스가 유용하다. 또 스텐트 시술에서도 담관이 좁아 위치 선정이나 진행이 어려운 경우도 스파이글래스로 길을 보면서 시술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대전성모병원에서 대전, 충청 지역 최초로 스파이글래스를 활용한 내시경 시술을 선보였다. 어떤 의미인지?
작년 7월부터 새 개정안이 시행돼 도관기반의 담췌관경 검사가 신설되고, 내시경하 담췌관 카테터가 선별급여로 지정됐다. 기존 역행성 담췌관조영술 및 역행성 담췌관 내시경 수술로 검사 및 치료에 실패한 경우 등에서 내시경하 담췌관 카테터인 스파이글래스를 쓰면 본인 부담률 80%가 적용된다.
그간 많은 환자들이 보험이 안되는 스파이글래스 때문에 고통과 시간적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옆구리에 구멍을 내는 경피경간 담도경하 쇄석술을 선택한 바 있다. 일부는 스파이글래스 시술 병원이 없어서 가족들을 대동해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로 원정 치료를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본원에서 보험이 적용된 스파이글래스 시술이 가능해진만큼 지역 주민들의 이동 편의성뿐 아니라 진료, 시술의 편의성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현재 ERCP가 담도와 췌장 질환의 진단과 치료의 표준 시술이다. 향후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한마디로 ERCP는 그림자를 보고 하는 시술이다. 맨 눈으로 직접 병변을 보고 하는 시술을 따라갈 수 없다. 지금 들으면 이상하지만 본인이 1990년대 초 펠로우 시절엔 대장내시경 기술이 있다는 말을 풍문으로 들을 정도로 당시 내시경은 최첨단 기술이었다. 당시 대세는 조영술이었는데 진단의 정확도 면에서 결코 내시경을 능가할 수 없다.
불과 20년, 30년만에 대장암 검사하면 전국민이 대장내시경을 떠올리는 시대가 됐다. 의료진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보다 정확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담도와 췌장도 다르지 않다. 늘상 담췌도를 눈으로 보고 진단 및 치료를 하고 싶다는 게 의료진의 열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파이글래스는 담췌관 분야의 '모범 답안'으로 생각된다. 직접 눈으로 보는 길이 열렸다. 안 쓸 이유가 없는 만큼 대중화는 시간 문제다. 대장내시경 사례가 곧 담췌도 분야의 '오래된 미래'와 같다. 스파이글래스는 이제 시작이다. 표준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전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