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환자와 호흡기 질환자의 동선을 분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한 '호흡기전담클리닉(이하 호흡기클리닉)'. 코로나19 대유행과 정부가 야심차게 도입했지만 이용률이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동선 분리를 통한 코로나19 감염위험 차단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공개한 '코로나19 이후 호흡기전담클리닉 활용방안 마련을 위한 위탁연구(연구책임 국립중앙의료원 조준성 임상시험센터장)'에 이 같은 내용이 실렸다.
정부는 2020년 6월부터 지난해까지 호흡기클리닉을 신청한 의료기관에 1억원씩 지원해서 총 1000곳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목표한 해를 넘기고 22일 현재까지 627곳에 그치고 있다.
연구진은 지난해 11월 기준 전국 호흡기클리닉 533곳(종합병원 164곳, 병원 139곳, 의원 86곳 등)의 운영 현황을 분석했다. 이 중에서도 242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시설 및 인력 현황 등에 대해 설문조사를 세부적으로 실시했다.
절반에 가까운 47%가 컨테이너 등 가건물을 따로 설치해서 호흡기클리닉을 만들었다. 가건물 설치는 종합병원과 보건소에서 많이 했으며 설문조사에 응답한 의원 44곳 중 84%인 37곳은 의료기관 내부에 호흡기클리닉을 구성했다.
가건물은 시세가 평년 보다 세배 이상 올라 설치에만 약 6000만원에 육박해 준비 과정에서 1억원의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가건물을 설치한 외부 공간 역시 정부의 '임시' 허가로 만들었기 때문에 일부 의료기관은 호흡기클리닉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시작했다.
호흡기클리닉에서 하루 평균 실제 근무한 전담의사와 간호사 수는 각각 1.58명이었다. 하지만 의원급에서는 간호사보다는 간호조무사 인력을 활용하고 있는 만큼 97.7%에서 한 명 이상의 간호조무사가 있었다.
설문조사에 응답한 호흡기클리닉 설치 의료기관 중 86%는 앞으로도 계속 현 시스템을 유지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의료진 및 환자 안전관리에 도움이 되고 일반 환자의 안심 수준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등의 이유 때문이었다.
호흡기클리닉 이용률은 낮지만 설치 목적 달성률은 '성공적'
이들 의료기관이 처음 호흡기전담클리닉을 운영하기로 한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감염 환자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권유, 정책 참여 의지가 뒤를 이었다. 호흡기클리닉을 따로 설치한다고 해서 병원 홍보 효과를 기대한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이처럼 의료기관은 정부에 별도의 예산을 받아 별도의 시설까지 만들어 코로나19 감염 환자와의 접촉 최소화를 꾀했지만 실제 이용률 자체가 크지 않았다.
2020년 9~12월 전체 급성 호흡기 질환 및 발열 환자 1607만9389명 중 호흡기클리닉을 찾은 환자는 15만7881명으로 0.9%에 불과했다. 호흡기클리닉을 설치한 의료기관에 호흡기 증상으로 내원하더라도 호흡기클리닉을 이용한 비율은 17.8%에 그쳤다.
그럼에도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을 최소화 하고 싶다던 의료기관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흡기클리닉을 이용한 환자 중 코로나19 확진자는 3.6%에 불과한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실제 의료기관들도 실제로 호흡기클리닉을 찾은 환자 중 확진된 환자가 있었지만 의료진이 감염되지 않았던 사례가 많았다고 응답했다. 호흡기클리닉이 없었다면 확진자가 병원 안으로 들어왔을 것이고 다른 환자도 그대로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호흡기클리닉 설치 의의가 충분히 있다는 것.
특히 호흡기클리닉을 설치한 아동병원과 소아청소년과는 해당 제도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이후 환자가 급감하면서 생긴 재정적 타격을 수가 시스템을 통해 보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 진료과 자체가 코로나19 이전에도 호흡기 질환과 감염 환자가 많기 때문에 공간 구분 시스템 자체에도 만족하는 편이었다.
반면, 정부 권유로 불가피하게 호흡기클리닉을 개설한 의료기관의 만족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비용과 시간이 필요 이상으로 들고 인력 소모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종식 후에도 호흡기클리닉 유지해야"
연구진은 코로나19 변화에 따라 호흡기클리닉 형태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미크론이 유행하면서 자가치료, 재택치료, 외래치료 등 수요가 늘어난 만큼 수요의 일부를 호흡기클리닉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현재 정부는 호흡기클리닉도 코로나 환자 검사 및 진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뒀다.
연구진은 장기적으로 호흡기클리닉을 유지해야 하며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또다시 발생할 수 있는 감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현 시스템 유지가 필요하다"라며 "단 시설 확충에서 중요한 점은 의료의 필요성을 파악하고 수요와 공급을 고려해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감염병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필요성과 접근성을 충분히 고려해 클리닉을 설치해야 한다"라며 "호흡기뿐만 아니라 다른 유사 감염병 발생 시에도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동선, 공간, 공조의 분리에서 다각도로 검토해야 유용성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더했다.
연구진은 "현재 대부분의 호흡기클리닉은 컨테이너 가건물 형태로 임시 허가 하에 설치돼 있고 코로나19 종식 후에는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시설 검토 후 기능적인 조건을 충족한다면 가건물의 장기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법률적 지원의 고려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또 "호흡기클리닉에 대한 낙인 효과를 방지하고 호흡기클리닉에서 진료가 필요한 환자가 거부감 없이 내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호흡기클리닉의 목적과 의의를 정확히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운영 시 인력 및 제도적 지원, 보상 부족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목된 만큼 단기적 지원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행정적, 물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장기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