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화에 성공하고도 내수 시장에서 고전하며 좀처럼 기지개를 펴지 못하던 국산 로봇들이 바다를 건너 판로를 개척하며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아직까지 자리잡지 못한 동남아시아 등을 공략한 성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 하지만 여전히 내수 시장은 난공불락이라는 점이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다.
국산화 성공한 의료 로봇 기업들 동남아시아 기반 판로 개척
26일 의료산업계에 따르면 국산 로봇 의료기기 기업들이 기술력을 기반으로 속속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러한 수출 호조를 이끌고 있는 기업은 일단 척추, 인공관절 수술 로봇과 재활로봇을 특화한 큐렉소가 꼽힌다. 인도 등에서 불씨를 붙여 중국 등 아시아 국가에 잇따라 깃발을 꽂고 있는 것.
실제로 큐렉소는 지난해 10월 인도 의료기기 기업인 메릴 헬스케어와 손잡고 사크라 병원에 기기를 수출한 이래 사이쉬리병원 등으로 이를 확대하며 인도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들 병원에서 300례가 넘는 수술이 이뤄지면서 입소문이 일자 같은 달 파람병원과 뭄바이 아디티병원이 잇따라 인공관절 로봇 큐비스 조인트를 구입하며 탄력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큐렉소는 지난 10월부터 12월까지 단 세달만에 인도 지역에만 8대의 인공 관절 로봇을 수출했으며 올해 1분기부터 10대의 추가 수출이 진행되며 급성장을 이뤄내는 중이다.
큐렉소 이재준 대표는 "코로나 대유행 상황에서도 지난해 인도 등에 수출이 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며 "올해도 계속해서 인도 등에서 수주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이러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기반으로 큐렉소는 중국 시장과 미국 시장 공략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코렌텍 차이나와 중국 진출을 위한 공급 계약을 맺고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중국 NMPA 인허가 절차에 들어간 것.
또한 미국 기업인 자베이션과의 협력을 통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아 미국 시장에도 발을 딛는데 성공했다.
이재준 대표는 "글로벌 인공 관절 및 수술 로봇 시장에서 큐렉소가 K-의료로봇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며 "미국 의료로봇 시장 진출과 함께 성장성이 가장 높은 중국 의료로봇 시장 진출을 통해 의료 로봇 수출의 새 장을 열겠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복강경 수술 로봇 국산화에 성공한 미래컴퍼니도 오랜 부진을 깨고 수출 판로를 열어가고 있다.
태국 의료기기 유통 업체 코진 메디칼 서플라이(KOSIN Medical Supply)와 레보아이(Revo-i)에 대한 유통계약을 체결하며 동남아시아 진출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을 통해 미래컴퍼니는 일단 올해 내에 레보아이에 대한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고 방콕과 치앙마이에 레보아이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현재 아시아 국가들이 통일된 의료기기 승인 절차인 AMDD(ASEAN Medical Devices Directive)를 도입하고 있는 만큼 태국을 기반으로 인접 국가로 판로를 넓힌다는 목표다.
이를 기반으로 미래컴퍼니는 이달 우즈베키스탄 의료기기 기업 엔도 시스템(ENDO-System)과 레보아이의 공급 채널을 구축하기 위한 협의 절차도 진행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미래컴퍼니 김준구 대표는 "복강경 수술 로봇 분야에 있어서는 다빈치가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을 점유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아직 점유하지 못한 국가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며 "현지의 역량있는 유통사들을 발굴해 현지화를 노리는 전략을 구상중"이라고 전했다.
내수 시장 공략은 여전한 난제…의사-기업 의견차
이처럼 동남아시아를 기점으로 국내 로봇 기업들이 잇따라 판로 개척에 나서고 있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바로 내수 시장에 대한 부분이다.
그나마 수출 판로가 열려 숨통은 트였지만 여전히 국내 의료기관들을 공략하는데는 번번히 고배를 맛보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국내에서 판매고를 보이는 기업은 사실상 최근 중앙대 광명병원 등에 기기를 공급하는 등 실적을 내고 있는 큐렉소가 사실상 거의 유일하다.
나머지 국내 의료 로봇 기업들의 내수 판매 실적은 처참하다. B기업의 경우 개발 후 몇년이 지나는 동안 국내 의료기관에 공급한 기기가 단 세대에 불과하고 그나마 C기업의 경우는 임상시험을 진행한 단 한개 병원에만 제품이 들어가 있는 상태다.
그렇다면 국내 의료 로봇들이 이처럼 내수 시장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의사들은 안전성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국산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해도 결국 충분히 검증된 제품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D대학병원 로봇센터장은 "언급한 기업들의 제품을 모두 접해봤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하지만 환자의 생명에 직결되는 의료기기라는 특성상 최대한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메뉴얼대로 구동이 되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전 세계에서 수만례, 수십만례 검증을 거치며 충분한 안전성을 입증한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며 "가격적인 면에서는 충분히 메리트가 있겠지만 그 외에 것들은 검증이 되지 않은 제품을 시험적으로 도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의 입장은 이와 좀 다르다. 국내 의사들이 국산 기기를 외면하면 어느 곳에서 검증을 받느냐는 토로가 대부분이다.
B기업 임원은 "아무도 제품을 써주지를 않는데 대체 어디에서 검증을 받으라는 뜻이냐"며 "적어도 의료기기 국산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최소한 공공병원이나 국립대병원 등에서 함께 기반을 쌓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