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접종부터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방역대책 중심에는 질병관리청 정통령 과장(감염병위기대응국 위기대응총괄과장)이 있었다. 팬데믹 기세가 한풀 꺾이면서 방역대책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낮아졌지만 하반기 팬데믹에 대비하느라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최근 만나봤다.
그와 인터뷰를 한 당일은 하루 신규확진가 수 가 3천명으로 떨어진 날이었다. 이제 한숨 돌렸겠다 싶었지만 그의 전화벨은 연신 울려댔다.
정 과장 또한 여전히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지난 2021년 8월, 해외파견 직후 질병관리청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질병청 위기대응총괄과장이자 중앙방역대책본부 총괄조정팀장이라는 중책을 맡으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실무 총괄로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19라는 신종감염병을 전세계 인구가 처음 겪다보니 방역대응을 이끌어야 하는 입장에서 수시로 새로운 결단을 해야하는 일이 그를 짖눌렀다.
가장 힘들었던 결정은 코로나19 백신 3차접종 시점 단축 결정. 당시만해도 유럽, 미국 등 팬데믹을 경험한 해외에서 3차 접종 간격을 6개월로 잡고 있었다가 추후 사망자가 늘면서 접종기간을 5개월로 단축하는 논의가 시작되던 시점.
해외 기준 그대로 6개월을 적용할 것인가. 팬데믹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파격적으로 접종 주기를 앞당길 것인가 선택이 필요했다. 고심 끝에 3개월로 단축키로 결정했다.
"고령자의 경우 젊은 층보다 사망률이 급격히 상승한다는 근거하에 빠르게 결정했어요. 해외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국내 데이터로 결정했죠. 한편으로는 당시 사망자가 급증하던 때라 결정이 더 빨랐던 것 같아요."
당시 일각에선 해외에선 6개월 기준으로 접종하는데 왜 한국만 3개월로 단축하느냐며 질문공세가 쇄도했지만 복기해보면 꽤나 성공적인 결정이었다.
2021년 겨울, 오미크론 팬데믹이 전국을 휩쓸었지만 직전에 요양병원에 입소한 고령환자 상당수가 3차접종을 마친터라 사망률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이 총 확진자 수로는 전 세계 10위권이지만, 사망자 수는 OECD국가 중에서도 끝에서 서너번째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3차 백신이 크게 한몫했다.
전도유망만 의사출신 복지부 공무원의 진로 변경
사실 정 과장의 질병청행은 예상치 못했던 행보. 그는 앞서 의사출신 공무원으로 보건복지부 내에서도 요직을 두루 거치며 역량을 발휘해왔다. 스위스 제네바 WHO(세계보건기구)로 파견을 마치면 당연히 복지부 요직으로 화려하게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기대(?)와 예측을 깨고 질병청을 택했다.
"스위스 파견 당시 코로나19가 시작됐어요. 해외에서 전세계적으로 신종감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돌아가면 의사면허를 가진 공무원으로서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유럽의 참혹한 팬데믹을 지켜보면서 그는 2015년, 메르스를 떠올렸다. 당시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이었던 그는 의사출신이라는 이유로 삼성서울병원으로 파견을 나갔다. 이후 의료급여과장을 지내면서 감염병 상황에서 의료시스템이나 병상배정 등 경험치를 쌓아놨던터였다.
그는 팬데믹 상황에서 확진자 동선 추적부터 지자체와의 업무협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당시 정은경 청장을 도와야겠다는 생각까지 더해지면서 그의 복귀는 복지부가 아닌 질병청이 됐다.
코로나19 소강기…질병청 재정비의 시간
정 과장은 최근의 소강기를 향후의 팬데믹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전쟁통 속에서 질병관리본부에서 질병청으로 승격이 되면서 급한 불부터 수습하느라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을 정비하는 시간.
"확진자 정보 등 대규모 데이터를 다뤄본 경험도 없고 해당 데이터를 자동으로 연계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효율적인데 급하게 대응하다보니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버텨왔죠. 이 부분을 전상화 등을 통해 효율화하는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그래야 대규모 유행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코로나19에 이어 신종감염병이 수시로 닥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질병청의 역량 강화를 요구받고 있다고 했다. 질병청은 독립기관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인력 및 조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
"미국에 훨씬 못 미친다는 영국의 경우에도 조직의 규모가 5500여명 수준입니다. 질병청 본청 인력도 보강이 필요해보입니다.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공중보건과 관련된 질병청과 같은 기구가 있을 때 국가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진다는 연구보고가 꽤 있거든요."
그는 이 과정에서 전문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기본적으로 역학적인 데이터를 해석해 정책을 추진하는 일련의 과정이 의학적 경험과 이해가 없으면 의사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질병청을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단단한 전문가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감염병이 사회적 재난으로 인식되면서 작은 실수도 파장이 커지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누가됐든 이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행정적인 역량도 뒷받침이 돼야겠지만요."
정 과장은 당장 팬데믹 대응 이외에도 먼 미래의 질병청의 역할 확장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질병청의 역할은 감염병에만 국한할 게 아니라 만성질환, 손상사고, 기후 환경 등도 공중보건이 필요한 영역이라며 향후 계획을 밝히며 회의 장소로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