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가 루푸스와 다발성경화증 질환을 동시에 가진 환자에 대해 스테로이드제와 면역억제제 투여를 중단시키고, 한방 치료를 시도하다 사망케 했다면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고등법원 제2민사부는 약 4년간 루푸스와 다발성경화증 치료를 위해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해 온 환자 박모 씨에게 약제 투여를 일시 중단하고,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대비책을 강구하지 않은 한의사 황모 씨에게 과실이 있다고 최근 판결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 황씨는 루푸스 등에 대한 별다른 의학적 지식과 임상적 경험도 없으면서 스테로이드제 투여를 신중하게 서서히 줄이거나 중단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위험한 부작용 발생가능성에 대한 대비책도 없이 스테로이드제 복용을 중단시킨 것은 과실에 해당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환자 박씨가 스테로이드 투여를 중단하면서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났지만 즉시 스테로이드제를 재복용시키거나 전원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도 피고의 과실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환자 박씨가 한의사 황모씨로부터 치료를 받기 전에도 이미 루푸스와 다발성경화증으로 한쪽 눈을 소실하고, 신경이상으로 스스로 일어나거나 보행이 불가능했다는 점 등을 감안해 피고의 책임 비율을 50%로 정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한방적 능력을 과신해 스테로이드제를 일시에 중단시켜 환자의 상태가 극도로 악화돼 결국 사망에 이른 경우 한의사는 그 사망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못 박았다.
지난 2002년 당시 17세였던 환자 박씨는 1996년 부산백병원에서 루푸스와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은 후 동아대병원, 서울대병원, 한양대병원 등을 오가며 2000년 1월까지 치료를 받다 한의사 황모씨의 권유로 약 2개월간 스테로이드 투여를 중단했다.
결국 박씨는 2000년 4월 다시 동아대병원으로 전원돼 다시 스테로이드 투여를 받았지만 증세 호전 없이 2003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