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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 묶인 의학계 "공정경쟁규약 너무 심하다"

안창욱
발행날짜: 2010-07-08 06:50:48

창간기획①돈줄 막혀 국제학술대회 줄줄이 축소

|창간7주년기획| 흔들리는 의학계, 대수술이 필요하다

공정경쟁규약이 시행되면서 의학계가 흔들리고 있다. 급격하게 줄어든 기부금으로 살림살이가 급속히 나빠졌고 국제학회 유치는 직격탄을 맞았다. 하지만 방만한 학회 운영방식으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공정경쟁규약 개정으로 촉발된 학회의 위기 상황을 짚어보고 올바른 학술단체로 재정립되기 위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공정경쟁규약에 몸살앓는 의학회
(2) 밥값도 안되는 등록비…관습 버려야
(3) 변화에 대한 요구…활로는 어디인가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학술행사만이라도 제대로 열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수십년간 꿋꿋하게 외풍을 이겨내던 의학계가 공정경쟁규약이라는 태풍에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국제학술대회를 유치한 학회들은 행사 개최가 불투명하다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고, 국내 학술행사 역시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초청연자 방한 취소 잇따라…"이제와서 어쩌란 말이냐"

오는 2013년 세계학회를 유치한 대한신경외과학회. 이 학회는 요즘 고민이 많다. 최근 초청연자로 초빙했던 인사들이 몇 명씩이나 방한을 재검토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들 인사들이 공식적으로 내세운 명분은 다른 주요 일정이 생겼다는 것. 하지만 행사 주최자인 대한신경외과학회는 결국 강연료 문제가 아니겠냐고 판단하고 있다.

세계신경외과학회 조직위원회 정용호 재정분과위원장은 "사실 대놓고 돈 때문에 안온다는 하진 않지만 정황상 결국 그런 뜻 아니겠느냐"며 "실제로 일부 인사들은 비행기를 비지니스 클래스에서 이코노미로 바꾸면 안되겠냐고 하자 갑자기 일정이 생겼다고 통보한 사례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세계 각국의 석학들이 모이는 세계학회라는 점에서 권위자들이 빠지면 앙꼬 없는 찐빵이 될 수 있다"면서 "국제행사를 유치하라고 등 떠밀던 정부가 이제와서 목을 죄고 나오면 학회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학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재정을 아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불만이다. 내년 국제모임과 2012년 대한위암학회를 준비하고 있는 대한암학회.

이 학회는 현재 예상보다 후원금이 너무 적어 연자를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김열홍 암학회 총무이사는 "사실 이름난 해외 석학 한명을 데려오는데만도 최소 7000불 이상이 소요된다"며 "항공료와 호텔 투숙비만 해도 이 정도가 최소 금액"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과거에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거금을 후원했는데 공정경쟁규약 개정후 학회에서 행사비를 조달해야 하는 게 문제"라며 "5명만 초빙해도 4억원에 육박하는데 이런 큰 돈을 감당할 학회가 얼마나 있겠느냐"고 밝혔다.

실제로 대한암학회는 공정경쟁규약이 실시되면서 1년에 1억원 이상 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들어갔다.

춘·추계학회를 개최하는데 대관비와 각종 부대비용만 4억원에 달하고, 시상금과 위원회 활동비가 1억원, 학술지를 발간하는데도 최소 5천만원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결국 1년에 학회 운영비용으로만 6억원 정도가 필요하지만 공정경쟁규약 시행후 수입금은 5억원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회원 교육도 올스톱…중소학회는 직격탄

고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회원 연수교육도 모두 기부행위로 간주되면서 매년 개최해오던 연수교육을 진행하지 못할 위기에 놓여있다.

대한암학회 박찬숙 회장은 "매년 전국을 돌며 회원들을 대상으로 최신 지견 교육을 진행해 왔는데 올해부터는 전면 취소될 것 같다"며 "이러한 교육이 없어지면 결국 서울과 지방의 의료격차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다른 목적도 아니고 지방의 의사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까지 왜 막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정부가 이 모든 결과에 대해 과연 책임을 질 것인지도 궁금하다"고 꼬집었다.

다른 학회들도 국제행사 준비에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행사 개최 성사가 불투명하다고 호소하는 학회도 많다.

대한노인병원협회는 내년 7월 아시아 만성기의료학회를 유치했지만 도저히 예산을 맞출 수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학회 김덕진 회장은 "국제학회 개최에 필요한 예산을 짜고 이에 대한 자금 확보방안을 고민하고 있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시한번 검토해보고 여의치 않으면 국제학회를 다른 나라에 양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중소학회들은 더욱 타격을 받고 있다. 전시부스가 줄어들고 런천심포지엄은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최근 태릉선수촌에서 춘계학회를 개최한 스포츠의학회. 이 학회는 전시부스가 6개에 불과했다. 점심식대 또한 학회가 예산을 동원해 겨우 메꿨다.

개원의 학회들도 상황이 심각하다. 메이저학회들까지 직격탄을 맞아 휘청이면서 대책을 강구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개원의 학회 중 규모있는 학회로 알려진 대한개원내과의사회. 이 학회는 지난해 60개가 넘는 전시부스를 유치했지만 올해 춘계학회에서는 30개를 겨우 넘겼다.

단순수치로만 계산해도 40% 이상 감소한 것이다. 이로 인해 학회 운영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음은 물론이다.

"학술상까지 막아서야" 학술활동 위축 우려감 팽배

공정경쟁규약으로 학술상에 대한 후원에 바리게이트가 처진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상당하다. 학술적인 부분까지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한소아과학회 이준성 이사장은 "학술상은 제약사가 금원을 후원하기는 하지만 학회에서 대상자를 엄격하게 선정하고 있다"며 "이러한 규제는 젊은 연구자들의 연구 의욕을 꺾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적어도 학술 발전에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은 건드려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