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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장비 도입 경쟁…'주화입마' 빠진 대학병원

발행날짜: 2011-01-04 06:50:03

환자 유출 자구책 적자로 부메랑 "특화로 승부해야"

|신년기획| 지난 10년과 앞으로 10년

최근 10년간 대형병원, 특히 빅5로 환자들이 집중하면서 의료전달체계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또 의료기관들은 고가의료장비를 대거 도입하면서 자원 낭비와 환자들의 비용 증가를 초래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으며,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료계의 진료영역 파괴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메디칼타임즈는 지난 10년의 변화를 짚어보고, 앞으로 10년 후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환자 블랙홀된 빅5, 성장 멈춘 대학병원
(중)패자의 역습…고가장비 도입 빛과 그림자
(하)변화하는 정글의 법칙…생존이 능력이다
대형병원들이 잇따라 외형을 확장하고 KTX의 발달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들면서 위기감을 느낀 대학병원들이 다빈치 등 고가장비 도입을 통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형병원에 못지 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홍보전략과 더불어 수익모델을 개발하겠다는 복안이지만 이마저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대다수 병원들은 오히려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우리도 한다" 로봇수술 도입 열풍

연도별 다빈치 도입 현황(3대는 비상업적 목적으로 도입됨)
고가장비 도입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경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부분은 바로 로봇수술로 대표되는 '다빈치'다.

메디칼타임즈가 3일 전국 병원들을 대상으로 다빈치 도입 현황을 조사한 결과 국내에 총 33대가 보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2005년 국내 최초로 다빈치가 도입된지 5년만에 전국 대학병원 중 절반 가량이 로봇수술에 뛰어든 것이다.

이같은 경향은 세브란스병원의 성공과 무관하지 않다.

세브란스병원은 국내 최초로 로봇수술을 도입한 이래 매년 1천례씩 수술을 진행하며 로봇수술의 메카로 거듭났다. 이를 통해 첨단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도 큰 도움을 받았다.

그러자 이러한 성공가도에 자극을 느낀 서울권 대학병원들은 잇따라 다빈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로봇수술로 재미를 본 세브란스병원이 2007년 또 한대의 다빈치를 구매했고 이어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병원들이 잇따라 로봇수술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자 2008년에는 지방권 대학병원들이 연이어 로봇수술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KTX 개통 등으로 환자유출이 가속화되자 이에 대한 대항마로 다빈치 도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2008년 초 동아대병원을 시초로 경북대병원과 원광대병원이 다빈치를 도입했고 2008년 말에는 아주대병원도 로봇수술센터를 설립하며 본격적인 로봇전쟁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는 로봇수술이 마치 유행처럼 전국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로봇수술이 선택이라기 보다는 필수처럼 받아들여졌고 결국 도입을 망설이던 수도권 대학병원들도 잇따라 로봇수술을 시작한다. 지방병원의 역습에 이은 수도권 대학병원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2009년 신촌 세브란스병원이 한대의 다빈치를 더 도입, 총 4대의 기기를 보유해 명실상부한 로봇수술의 메카를 조성했고 이대 목동병원과 을지병원 등이 막바지에 로봇전쟁에 뛰어들며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여기에 2010년도에 들어오면서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흔히 말하는 빅 5병원들이 잇따라 추가로 다빈치를 도입하며 다시 승기를 잡아나갔다.

과도한 경쟁의 늪…"독사과 씹었다"

하지만 이러한 로봇전쟁에서 기쁨을 맛본 대학병원들은 극히 드문 것이 현실이다. 환자 유출을 막기 위한 대항마가 오히려 자충수가 되어 돌아온 경우가 많다.

A대학병원은 지난 2007년 다빈치를 도입했지만 현재까지 수술건수가 200례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의 B대학병원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다빈치를 도입한지 1년이 넘었지만 수술건수는 80례에 불과하다. 한달에 불과 6~7건의 수술이 이뤄진 것이다.

이같은 상황은 대다수 대학병원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사안이다.

실제로 지방의 C대학병원은 2007년 다빈치를 도입했지만 아직 300례도 채우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로봇수술을 시작한 서울아산병원이 1300례를 넘어선 것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D대학병원도 마찬가지. 2008년 처음 로봇수술을 시행한 이래 이제까지 수술건수는 250례에 불과하다. 한달 늦게 다빈치를 도입한 서울대병원은 이미 지난해 1000례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이들 병원들은 어떻게 로봇센터를 운영하고 있을까.

현재 다빈치를 구입할때 초기비용은 30억원에 달한다. 또한 로봇팔 교체 등 유지보수 비용이 한달 평균 1300만~15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용에 인건비를 합산할 경우 한달에 최소 80건 이상 수술을 진행해야 손익분기를 맞출 수 있다고 추산한다.

현재 이정도 수술을 시행하고 있는 병원은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빅 4병원이 유일하다.

결국 이외 병원들은 모두 적자를 감수하며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빅 4병원에 환자를 뺏기지 않겠다며 도입한 다빈치가 오히려 적자를 늘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C대학병원 관계자는 "사실 병원에서 너무 장미빛 미래만 바라본 경향이 있다"며 "물론 지방에서도 로봇수술에 대한 수요는 있었지만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결국 그 극소수의 환자를 받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며 다빈치를 도입한 꼴이 됐다"며 "서울로 환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독이 든 사과를 알면서도 먹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로봇기기가 너무 대중화되다 보니 병원들이 최소한의 경제성을 보장하기 위해 적응증을 확대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로봇수술을 시행하는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근거"라고 지적했다.

"시설과 장비 아닌 특성화된 의료의 질로 승부해야"

그렇다면 과연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블랙홀 현상에 대응할 수 있는 길은 없는 것일까.

삼성창원병원 김계정 원장은 "인프라가 월등한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중증 암환자가 몰리는 것을 한두가지 시설과 장비를 들여놓는다고 막을 수 있겠느냐"며 "차라리 그 부분을 포기하고 서울에서 할 수 없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암환자를 진단한 뒤 서울에서 치료를 받기를 원하면 대형병원으로 의뢰한 후 다시 되돌아 오는 환자를 케어하면 되지 않겠냐"며 "진단과 치료 후 처치에 만족감을 느껴 입소문이 나면 암환자도 자연스레 돌아온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대형병원의 포션을 억지로 가져오려 하지 말고 중소형 대학병원의 장점을 살려나가면 자연스레 경쟁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왕준 이사장은 "예를 들어 심혈관질환과 뇌혈관질환은 시간을 다투는 질병이니 만큼 지역 병원을 찾을 수 밖에 없다"며 "이들은 대형병원이 차지하고 싶어도 가져가지 못하는 환자"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명지병원이 심-뇌혈관센터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며 "우선 이러한 환자들을 만족시키고 점점 더 영역을 확대해가면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충분히 생존책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