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당뇨병 치료제 급여 기준 개정
불필요한 간섭인가 환자들의 건강권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인가.
최근 정부가 입법 예고한 당뇨병 급여기준 개정안을 두고 복지부와 의료계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갈등의 핵심은 단독요법 약제로 메트포민을 한정한 것과 병용요법시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해야 하는 부분으로 각자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논란이 불가피하다.
원론과 방법론의 차이
정부가 발표한 당뇨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세부인정기준 및 방법 일반원칙 제정안은 이렇다.
제2형 당뇨병 환자에 대한 단독 요법은 Hb1AC, 즉 당화혈색소 수치가 6.5% 이상인 경우 메트포민 처방에만 요양급여를 인정한다.
메트포민에 대한 부작용이 예상되는 경우 SU계 약물, 즉 설포닐우레아 제품을 처방할 수 있지만 이 경우 반드시 의사 소견서를 첨부해야 한다.
단독처방으로 혈당이 떨어지지 않아 병용요법으로 전환할 경우도 의사 소견서를 필수적으로 첨부하도록 했다. 사실상 단계적 치료법에 모두 의사 소견서를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당뇨병학회 등 의료계와 복지부간 이견이 크지는 않다. 원론적인 부분에서는 뜻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론적인 부분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이중에서도 가장 갈등을 빚고 있는 부분은 의사 소견서를 요구한 것과 1차 처방약을 메트포민으로 한정한 것이다.
즉, 이러한 2가지 항목이 의사의 처방권을 지나치게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 의료계의 의견이다.
대한개원내과의사회 관계자는 "감기만 하더라도 증상에 따라 약이 수만가지인데 수많은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당뇨에 한가지 약을 쓰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대한당뇨병학회도 이와 뜻을 함께하고 있다. 원론적인 부분에서는 동의하지만 이런식으로 처방을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박성우 이사장은 "처방을 정형화해 한가지의 틀을 만드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며 "그 어떤 질병도 처방을 일반화 할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박태선 보험이사는 "이미 당화혈색소 수치로 치료 단계 전환을 규정하고서 굳이 의사 소견서를 덧붙이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라며 "이는 불필요한 행정절차인 동시에 의사의 처방권을 지나치게 규제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의사 소견서는 삭감 도구"vs"지나친 기우"
그렇다면 왜 의사 소견서가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의료계의 가장 큰 우려는 의사 소견서가 삭감의 덫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급여 기준에 굳이 '정당한 사유'를 가진 의사 소견서를 요구한 것은 이를 심사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A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치료 단계를 바꿀때마다, 또한 지정된 약 이외의 처방을 할때마다 의사 소견서를 내라는 의미를 면밀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환자에게 임의 비급여로 처방을 내리고 심평원의 심판을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겠냐"고 풀이했다.
실제로 대다수 임상 의사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으며 의사 소견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는 학회 역시 마찬가지다.
당뇨병학회 관계자는 "내분비내과 교수들이야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니 기준을 벗어날 일이 많지 않다"며 "사실 심평원도 교수들의 처방에 함부로 칼을 들이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제는 개원 의사들의 소견서를 얼마만큼 인정해 주느냐 하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일선 개원가는 사실상 메트포민 처방 외에는 손발이 묶이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지나친 기우라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뇨치료제 급여 기준은 말 그대로 무분별한 처방을 방지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의 성격"이라며 "의사 소견서 또한 환자의 건강권과 건강보험 재정 안정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의사 소견서가 삭감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처럼 당뇨병 급여기준 개정을 놓고 의사 소견서가 갈등의 씨앗으로 불거지면서 과연 복지부가 이같은 입법예고안을 강행할지, 또한 만약 원안대로 법안이 시행되면 의사의 처방 패턴에 어떠한 변화가 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