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근 진행된 연간 소요약 입찰에서 무더기 '1원 낙찰' 사태가 재현됐다.
입찰에 나선 도매업체가 병원 내 처방 코드를 잡기 위해 과당 경쟁에 나선 결과다. 시장형 실거래가상환제(저가구매 인센티브제)에서 병원에 기준가보다 싸게 약을 공급하면 이듬해 약값이 깎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많은 종합병원이 원내와 원외 코드를 같게 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원내 코드에 잡혀야만 원외(약국) 처방이 나올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다.
통상 제약사의 전체 매출 중 90% 가량은 원외 처방에서 나온다.
제약사들이 병원에서 처방되는 약을 거의 공짜(1원)로 공급하더라도 필사적으로 원내 코드에 이름을 올리고자 하는 이유다.
바꿔말하면, 절대적으로 갑의 위치에 있는 병원이 원내 코드라는 미끼를 이용해 업체간 경쟁을 붙인다면 '1원 납품' 등의 부작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쌍벌제보다 무서운 건 저가구매 인센티브제"
업계는 이런 저가구매 인센티브제 부작용이 갈수록 심화된다고 입을 모은다.
원내 코드를 잡기 위한 업체간(도매 또는 제약) 과당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이는 자연스레 약가인하로 이어져 제약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2일 막을 내린 서울대병원 입찰 결과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한 눈에 드러난다.
무려 380여 품목에서 1원 낙찰이 발생했다. 업체간 원내 코드를 잡기 위해 제네릭은 30~40%, 오리지널은 7~10%까지 할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 코드에 신규로 입성한 제품도 많았다.
업체간 제살깎기식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의 폐지를 주장한다.
한 국내제약사 사장은 "표면적으로는 쌍벌제가 제약산업을 옥죄고 있는 형상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더 문제되는 것은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다. 자칫하면 산업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제약협회도 의견을 같이 했다.
협회 관계자는 "제약업계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 시행으로 연간 1조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며 "특히 국내 제약사가 피해의 80% 이상이 집중되고 있다. 제도가 조속히 폐지돼야 한다"고 거들었다.
실제 협회가 최근 내놓은 분석 자료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 5712억 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된다. 또 2012년 사후관리에 의한 약가인하 금액은 5361억원이다.
이는 오리지널은 3~5%, 제네릭은 35% 수준의 할인된 가격으로 병원에 공급되고 있는 현 납품 현실을 반영한 수치다.
한 다국적제약사 관계자는 "병원이 경쟁을 유도하면 제약사들은 속수무책이다. 비급여약까지 저가 납품을 강요하니 말 다한 거 아니냐"며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