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의사 B씨. 작년 말 10여년간 운영하던 의원을 경영상의 문제로 정리했다.
처음에는 모아놓은 돈도 있고 해서 천천히 봉직의 자리를 구하자는 생각이었지만, 막상 일자리가 구해지지 않자 갈수록 초조해지고 있다.
그는 "병원장들이 내 나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느꼈다"면서 "현재 대진의 등으로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폐업의사들, 빈곤층 나락으로
경영상 문제로 폐업을 택한 개원의들은 주로 다른 지역에서 재개원을 하거나 봉직의로 활동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존 의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대출금, 의료기기 리스료 등을 해결하지 못한 경우 그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한 개원의는 "개원 실패의 여파는 재개원하거나 봉직의로 활동하더라도 몇 년은 간다"면서 "돈을 벌어도 빚을 갚는데 급급한 신빈곤층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재개원의 경우 막대한 비용 투입에 대한 리스크를 또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감이 최초 개원보다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봉직의 경우에도 인기있는 진료과는 나은 편이지만, 비인기과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비인후과의사회 관계자는 "이비인후과, 소아과 등은 봉직의 수요도 없는 편이고 임금 역시 '정·재·영'과에 비해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면서 "비용 때문에 재개원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게다가 적지 않은 나이라면 봉직의를 택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대진의나 당직의로 활동하는 의사도 있다.
서울시의사회 관계자는 "아예 연세가 많으신 분은 요양병원 등에 일주일에 2~3일 정도 소일거리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50대의 경우 자리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폐업의들 노리는 사무장병원의 유혹
이러다 보니 폐업의사들을 노리는 검은 유혹도 적지 않다. 특히 사무장병원을 개설하려는 일반인에게 이들은 좋은 먹잇감이 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무장은 "개원에 실패한 50대 의사들이 사무장병원을 하려는 사람의 타겟이 된다"면서 "이들의 경우 재개원이나 봉직의 취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러다보니 사무장병원에 고용되거나 사무장에 면허를 빌려주다 오히려 큰 나락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현지실사 등을 통해 사무장병원임이 밝혀져 의사가 요양급여비용뿐 아니라 5배의 과징금까지 떠안는 경우가 그것이다.
의사 B씨는 "사무장병원의 경우 오히려 나이가 많은 의사를 구한다"면서 "경제 형편을 보면 솔직히 그런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사 사회에서 멀어지는 폐업의들
"어려워 폐업하고 떠나는 의사들은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떠납니다."
서울의 한 구의사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렇다보니 그 개원의가 어디로 갔는지,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 폐업 후 재개원하는 경우는 표시가 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어렵다면서 의사회 가입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폐업의들은 점점 의사사회에서 멀어지고 있다. 의사 B씨는 "의료환경을 바로잡지 못한 의사회에 어떤 애정을 갖겠냐"면서 "또 실패했다는 좌절감으로 주위 동료의사의 시선을 피하게 되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