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이 요양급여 심사기준을 제정할 때 근거로 삼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져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행정법원은 최근 아토피 박사로 잘 알려진 소아과 전문의 노건웅 원장이 심평원을 상대로 '약제 요양급여기준 제정 근거자료 공개'를 청구한 행정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노 원장이 자료 공개를 요구한 약제는 인터맥스 감마 주사제.
이 약제는 허가사항을 초과하더라도 표준요법에 반응이 없는 중증의 아토피성 피부염에 사용할 경우 급여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자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피부과분과위원회는 2006년 3월 국소 스테로이드, 국소 calcineurin 억제제, 전신 스테로이드, 항히스타민, 항생제 등의 표준요법을 '12개월간' 시도해도 호전을 보이지 않는 심한 아토피 피부염에 대해서는 인터맥스 감마를 투여할 수 있다는 급여인정기준을 마련했다.
심평원은 이 심사기준의 근거로 ▲피부과학(대한피부과학회교과서편찬위원회, 개정4판, 2001년. p165) ▲ 아토피 피부염에서 감마 인터페론의 치료효과(소아알레르기 및 호흡기학회지 제9권 제2호, p200~209, 1999년) ▲대한피부과학회 초록(1999년)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그는 "많은 의사와 환자들은 스테로이드 등의 심각한 부작용을 우려해 가급적 사용을 꺼리고 있으며, calcineurin 억제제 등은 아토피 피부염에 사용하기에는 부담이 많다"고 환기시켰다.
특히 노 원장은 "이런 약제들을 신생아나 영유아에게 12개월 사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아토피 피부염이 심한 이들에게 이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약제를 우선 사용하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아토피 피부염에서 소위 표준요법이라고 제시한 대증요법을 12개월씩 실시하지 않아도 단기에 인터맥스 감마를 사용하면 쉽게 호전될 수 있는 환자들에게 부작용으로 인해 투약을 꺼리는 스테로이드 호르몬제제와 같은 약제를 12개월씩 우선 사용하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못 박았다.
이에 따라 노 원장은 2009년부터 심평원에 2006년 3월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피부과분과위원회가 급여인정기준을 제정할 당시 의사 결정과정에 제공된 회의 자료, 의사결정 과정이 기록된 회의록 등을 공개하라고 공식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공공기관정보공개법에 따라 이들 정보가 비공개 대상이라며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노 원장은 심평원이 관련 정보 공개를 거부하자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를 청구하고 나섰다.
이 사건에 대해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지난해 8월 피부과분과위원회 의사결정과정에 제공된 회의 관련 요약자료 중 관련 학회 의견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한 정보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재결했다.
노 원장 이같은 재결에서 불구하고 심평원이 일부 자료만 공개하자 지난해 11월 행정소송을 청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인터맥스 감마 약제를 원외처방하면서 공단으로부터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공단은 노 원장이 요양급여기준에 반하는 원외처방전을 발급, 공단이 지급하지 않아도 될 약제비 1400여만원을 부담하게 했다며 2009년 7월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하고 현재 2심에 계류중이다.
한편 서울행정법원은 판결을 통해 "심평원은 2006년 3월 피부과분과위원회 회의 관련 자료 가운데 발언을 한 위원들의 인적사항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공개 거부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피부과분과위원회 위원들의 인적사항을 제외하고, 회의 관련 자료와 회의록을 모두 공개하라는 게 법원의 결정이다.
노 원장의 2년간 끈질긴 요구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당시 소장에서 "심평원은 정착 환자 치료에 실제 적용되는 근거자료 요청에 대해 성의없고, 복지부동의 자세로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이는 의사를 우롱하는 행정"이라고 날을 세웠다.
의료계와 심평원이 심사기준을 둘러싸고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 원장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함에 따라 앞으로 심평원을 상대로 심사기준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의료계의 요구가 거세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