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은 의사를 고용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해 온 비의료인 사무장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이 진료비를 환수한 것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 뿐만 아니라 사무장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최초의 항소심 판례이라는 점에서 판결이 확정될 경우 사무장병원을 척결하는데 일조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등법원은 15일 비의료인인 손모씨, 장모씨 등이 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채무부존재확인 항소심을 기각했다.
치과 기공사인 손씨는 2004년 11월부터 2005년 3월까지 서울에서 치과의원을 개설한 후 치과의사 이모씨를 고용해 진료하게 하면서 월 평균 3400여만원 상당의 수입을 올렸다.
황씨도 이런 방법으로 의사 이모씨 직원 3명을 고용, 의원을 개설했고, 장모씨, 최모씨 역시 이런 수법으로 의사를 채용해 진료 하도록 했다.
이들은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돼 손씨는 1심에서 징역 3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다.
손씨 이외의 사무장들은 항소심에서 벌금 5백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은 이들이 부당하게 요양급여비용을 지급받았다며 민법 741조 내지 750조를 적용해 환수 처분을 내렸다.
민법 741조에 따르면 원인없이 타인의 재산 또는 노무로 인해 이익을 얻고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 민법 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환수 처분액은 손씨가 1600여만원, 장씨가 6700여만원, 최씨가 1300여만원, 황씨가 5400여만원 등이다.
이 같은 환수 처분액은 공단이 이들 사무장과 이들에게 고용된 개설 원장에게 연대 책임을 물은 금액의 일부라는 게 공단의 설명이다.
그러자 이들은 채무부존재확인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이 지급한 요양급여비용은 자격을 갖춘 의사의 정당한 진료에 대한 급부로서, 의사 또는 법인에 지급된 것이어서 원고들이 부당한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공단에 대한 원고들의 부당이득 반환 책임도 없으므로 환수통보한 채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반면 공단은 "원고들은 의료인이 아님에도 의료기관을 개설해 의료법을 위반했으며, 위법한 행위로 인해 공단은 지급의무 없는 요양급여비용을 지출,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불법행위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9월 원고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의료인이 아닌 원고들이 병원을 개설하는 위법행위를 했고, 병원에서 의사로 하여금 진료행위를 하게 한 뒤 공단에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해 공단은 지급 의무가 없는 요양급여비용을 지출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사무장 역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이날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간 공단은 건강보험법 제52조 제1항을 근거로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원장에게 부당이득을 환수해 왔다. 비의료인인 사무장의 경우 건강보험법상 환수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단은 사상 처음으로 건강보험법이 아닌 민법을 적용, 사무장과 원장에게 연대책임을 물었고, 항소심 재판부도 정당한 처분이라고 판결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 판결이 확정되면 복지부는 건강보험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사무장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돼 사무장들이 허술한 법망을 악용, 사무장병원을 개설하는데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