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 위치한 모대학병원 A교수는 병원장과 자신이 속한 정형외과 진료과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원장과 진료과장이 공모해 자신이 개발한 척추수술 치료재료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A교수가 몇년 전 척추수술 치료재료인 '맞춤형 척추경 나사못(척추 고정용 나사못)'을 직접 개발한 이후 불거졌다.
그는 이 치료재료를 이용해 척추수술을 하기 시작했는데, 심평원은 2004년부터 A교수의 수술 관련 요양급여비용을 대폭 삭감하기 시작했다.
A교수가 척추경 나사못을 이용한 시술 적응증이 되지 않는 환자들을 수술하고 있다는 게 삭감 이유다.
A교수에 대한 심평원의 삭감률은 35% 이상. 수술 3건 중 1건이 요양급여기준을 위반했다는 것으로 사상 초유의 삭감률이다.
그러자 해당 대학병원은 윤리위원회를 소집, A교수에 대해 시술 중단 조치를 취했다.
▲A교수가 발표한 척추경 나사못 관련 논문이 조작된 의혹이 있고 ▲수술법이 의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척추경 나사못 생산업체와 A교수가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해당 치료재료로 수술 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척추경 나사못 생산업체 대표는 A교수의 부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은 A교수가 기존 환자를 진료하는 것 이외에 신환을 진료하거나, 척추관 협착증 수술을 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징계를 가했다.
이에 대해 A교수는 "윤리위원회를 소집하는 것 조차 몰랐고, 한번도 소명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또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이 치료재료를 사용해 수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평원이 진료비를 삭감해 병원이 손해를 입었다는 이유로 진료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교수는 병원장이 보험심사과에 지시해 35% 수준이던 심평원 삭감률을 52%까지 부풀려 의무부총장에게 보고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병원장 측은 A교수의 시술이 의료윤리를 위배한 것이어서 이런 조치가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병원장 측은 "A교수의 삭감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다"면서 "이는 수술 적응증이 되지 않는 환자들에게 마구잡이식으로 시술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치료재료 생산업체와 A교수가 밀접하게 얽혀있고, 의사의 재량권을 넘어서 수술을 남발한 행위는 의료 윤리적인 문제와 결부된 것이어서 이런 극단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환기시켰다.
이 사건에 대해 최근 검찰은 병원장에게 500만원, 진료과장에게 200만원의 벌금형을 구형했다.
공소장에 따르면 병원장과 진료과장은 서로 공모해 A교수의 정당한 진료업무를 방해하고,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병원장과 진료과장은 이에 불복,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며 1차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의사의 재량권과 의료윤리의 충돌
이 사건은 두 가지 의료윤리 문제가 걸려있다. 하나는 적응증이 되지 않는 환자들을 시술했는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시술자가 이해상충(conflict of interest) 상황에 놓여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의료법상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어떤 의료행위라도 할 수 있지만 이런 재량권 남용을 견제하기 위해 의료윤리를 강조하는 추세다.
이러한 의료윤리 문제는 신의료기술, 새로운 치료재료, 신약 개발자일수록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의료윤리 사례가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의 '카바수술'이다.
의학계는 송 교수가 적응증이 되지 않는 환자에게 무리하게 시술하고 있으며, 카바수술용 링을 제조하는 회사의 주식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는 이해상충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제약사의 리베이트 역시 이해상충에 해당한다.
모 의대 교수는 "의사들이 리베이트를 받거나 자신과 관련이 있는 치료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환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이어서 이해상충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RB 기구를 두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