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확산으로 환자들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병원과 의료진들도 방어막을 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자칫 빈틈을 보이면 무능한 의사로 찍히거나 소송에 휘말리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
의료정보 무장한 환자들…"논문 검색은 기본"
A대학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요즘 환자들은 내 박사 논문까지 다 검색해보고 진료 받으러 온다"면서 "심지어 진료실 안에서 아이패드를 꺼내놓고 해외 논문과 케이스 스터디를 나에게 보여주는 환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만약 이러한 환자에게 자칫 빈틈을 보이면 순식간에 각종 포털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무능한 의사로 낙인찍히거나 사기꾼이 돼버린다"며 "대학병원이 이런 상황인데 개원의들은 오죽 하겠느냐"고 털어놨다.
실제로 상당수 의사들은 환자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부정적인 것도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감을 표했다.
B대학병원 원장 출신인 이비인후과 개원의는 "질병이 중한 것 같아 대학병원에 가보라고 권유했더니 몇일 후에 '대학병원 교수 출신인데도 실력이 없더라'는 글이 올라왔다"며 "정보를 나누는 것도 좋지만 이래서야 의사와 환자 사이에 라포르가 생기겠느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무너진 신뢰…"아무도 믿을 수 없다"
이렇듯 수동적이던 환자들이 의사를 평가하기 시작하면서 진료비 확인민원도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일부 환자들은 이를 빌미로 병원과 거래를 하는 사례까지 있어 대학병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C대학병원 원무팀장은 "정말 진료비가 적정한지를 알아보려 심평원을 찾는 환자가 몇이나 되느냐"며 "이제는 이를 빌미로 병원과 거래를 하자는 환자들까지 나오고 있다"고 꼬집었다.
진료비 확인민원을 넣지않을 테니 선택진료비 등 일부 비용을 할인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이렇게 병원비를 감면해 줄 경우 소문이 급속하게 퍼지면 환자들이 동요하기 때문에 병원으로서는 난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일부 환자들은 블로그 등에 진료비를 할인받는 노하우라며 이런 방법을 전파하고 있어 병원을 더욱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교수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충분히 설명하고 최선을 다해 치료해줘도 병원을 나서는 순간 얼굴을 바꾸는 환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D대학병원 교수는 "환자가 병원비를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아 충분히 비급여 비용이 발생하는 이유와 필요성에 대해 설명해주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줬다. 심지어 선택진료비도 받지 않았는데 퇴원하자 마자 민원을 제기해 버리니 힘이 빠지지 않겠냐"고 전했다.
그는 이어 "몇번 이렇게 당하다보니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환자의 재정상황을 살피게 된다"며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방어진료를 하고 있더라"고 덧붙였다.
방어벽 세우는 병원…"당할수 만은 없지 않냐"
이로 인해 일부 병원에서는 공공연하게 속칭 블랙리스트 환자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자체적인 방어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E대학병원 관계자는 "배 째라는 식으로 진료비 할인을 요구하는 환자나 충분히 설명해줬는데도 민원을 넣는 환자를 눈여겨 보는 게 사실"이라며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원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를 들어 민원을 제기했던 환자들이 오면 최대한 임의비급여 등을 자제하고 치료하도록 의료진에게 권고한다"며 "한번 민원을 넣었던 환자가 두번 넣을 확률이 높은 게 사실 아니냐"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