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건국대병원 5층 휴게실. 오후 1시 20분 쯤 되자 외과 과장이자 대장암센터 소장인 황대용 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대용 교수가 환자, 보호자들과 만나 소통하는 '정(情)담회'가 있는 날이다.
그는 매월 둘째, 넷째 금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정담회를 연다. 벌써 30회를 넘었다.
황 교수는 행사 시작 10분 전부터 나와 환자, 보호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안내한다. 인심좋은 옆집 아저씨처럼 격식도, 권위도 찾아볼 수 없다.
1시 30분부터 30분간 웃음치료를 하고 나면 황 교수는 1시간여 동안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운동, 식이요법 등을 설명한다. 유정아 영양팀장도 중간 중간 돕는다.
대장암센터 유춘근 교수도 급한 업무를 처리하면서 정담회 내내 자리를 지켰다.
설명을 마치면 환자들로부터 온갖 질문이 쏟아진다. "왜 5인실에 입원할 수 없느냐" "유황오리 고기를 먹어도 되나요" "한약을 같이 복용해도 되나요" 등등
어느덧 시간은 3시. 더 질문이 없자 정담회는 끝이 났다.
곧 바로 학술대회 좌장으로 가야 한다는 황 교수와 잠시 인터뷰를 나눴다.
"외과 과장에다 대장암센터 소장을 맡고 있고, 외과 병동의 절반 가량이 대장암 환자일 정도로 바쁠텐데 벅차지 않느냐"고 물었다.
"의사라는 게 환자 때문에 존재하는 게 아니냐." 명쾌한 대답이었다.
그는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라면서 "처음 시작할 때는 잘 될까 걱정도 했지만 막상 하니까 자연스럽게 되고, 좋은 습관이 되더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 환자들에게 이런 저런 것을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항상 어떻게 도움을 줄까 고민하고 찾아야 하는 게 의사"라고 덧붙였다.
황대용 교수의 소통법이다.
황 교수의 소통법은 명함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의 명함에는 휴대전화 번호가 적혀있다.
그는 "내 휴대폰 번호를 아는 분들은 언제 전화해도 내가 받을테니까 안심을 하는 것 같다"며 웃어 넘겼다.
그는 누구라도 명함을 달라고 하면 준다.
그는 "꽤 많이 전화가 오는 게 사실이지만 막상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나니까 그 분들이 의사들을 오히려 걱정해 준다"고 강조했다.
의사들이 바쁜 시간을 피해 전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는 "수시로 전화가 오지만 그렇다고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황 교수의 환자만 전화하는 것도 아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 심지어 미국에서 전화가 걸려와 깜짝 놀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한다.
가끔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한시간 넘게 상담을 해 줄 정도다.
그는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아셨어요 하고 물으면 대부분 한 다리 건너서 알게 됐다고 한다"면서 "주변에 아는 의사가 없고, 절박하게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번은 유명한 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물론 그와는 일면식도 없었다.
환자가 다급하게 뭔가 이야기를 했지만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 펠로우를 바꿔달라고 해서 사연을 듣기도 했다.
그는 "환자들은 속 시원하게 설명을 듣고 싶은데 아무도 안해주니까 어떻게 전화를 했더라"면서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고 밝혔다.
심지어 어디가 아픈데 좋은 의사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직접 진료예약까지 해 준 적도 있다. 만인의 의사인 셈이다.
또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이런 것 아니냐."
특히 그는 "환자들과 소통을 하면 의사에게도 도움이 된다. 절대 일방통행이 아니다"고 환기시켰다.
환자들이 전화나 이메일로 던지는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문의하고, 자료를 찾다보면 의사로서 알아야 할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황대용 교수는 "환자는 의사의 선생님이란 말이 맞다"면서 "배우는 게 많을수록 좋은 의사인 것 같다"면서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