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교수에게 인문학을 묻다>
의사의 윤리의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의과대학은 앞다퉈 의료인문학과를 개설하는 등 인문학 교육에 관심을 쏟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의과대학 교수를 직접 만나 의료인문학에 대한 그들의 철학과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인터뷰는 매주 연재된다. <편집자주>
전혀 동떨어진 학문으로 여겨지는 '의학'과 '인문학'. 그러나 의료계에선 두 학문을 융합한 '의료인문학'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두 학문이 만나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까? 20일 연세의대 손명세 교수(57·예방의학과·보건대학원장)의 견해를 들어봤다.
손 교수는 "의학과 인문학을 융합한 교육은 의사가 의료현장에서 철학적인 문제와 마주했을 때 해답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문학적인 교육을 받은 의사는 철학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의학지식만 배운 의사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생각하는 의료인문학이 순수 인문학(문학, 역사, 철학)을 교육하자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말한 인문학은 의학과 연계한 것으로,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밑거름 역할을 해주는 요소다.
또 그는 "의사국가고시에서도 작문 실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 한번쯤 고민해 봐야하는 의료윤리적인 문제가 적당하다"고 강조했다.
손 교수는 지난 2003년 연세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이라는 강의를 맡은 데 있으며, 2004년 '의학과 문학'을 펴냈다.
또한 2008년 의학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의학은 나의 아내, 문학은 나의 애인'을 내고, 2010년에는 문학의학학회를 출범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다음은 손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에게 인문학이 중요한가.
A: 그렇다. 전문가들이 갖춰야할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인문학적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않아도 의사나 기업의 CEO가 될 수는 있지만 '좋은' 의사나 CEO가 될 수는 없다.
특히 전문적인 의학적 기술을 강조하는 사회가 될수록 인문학 교육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의대생들에게 인문학의 향기를 맡게 해줌으로써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풍성하게 해줄 수 있다고 본다.
Q: 의료인문학 교육을 해오셨는데 실제로 학생들의 변화가 있었나.
A: 물론이다. 인문학 교육을 받은 이후 의대생들은 인문학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문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의사도 상당히 늘었다. 이런 것들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본다.
이처럼 자연과학적인 의학지식만을 교육하기 보다는 인문학 교육을 통해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게 필요하다.
Q: 의료인문학이 순수 인문학 즉, 순수 문학, 철학, 역사에 대해 교육하는 것인가.
A: 아니다. 인문학 속에서도 의학과 관련된 의학문학, 의학사, 의료윤리학 등을 배우자는 것이다. 의학과 인문학이라는 학문을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Q: 그럼, 의학과 인문학이 융합된 교육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
A: 가령, 과거 아랍의 의학문학을 배운다고 치자. 아랍인들은 환자의 의무기록을 환자와의 대화부터 세세하고 흥미롭게 적었다. 굉장히 문학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일종의 기록문학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의무기록을 단순한 업무가 아닌 역사적으로 혹은 문학적인 행위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출 수 있게 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응급실에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크게 다친 어린이가 실려왔다고 치자. 부모는 자전거 사고라고 했지만 의사는 아동학대라는 의구심이 생겼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리고 만약 그 부모가 의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위 사례처럼 의사는 선의로 한 행동이지만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의학교육만 받은 의사라면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철학분야 중 의료윤리학을 통해 의사의 윤리와 역할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본 의사라면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Q: 최근 의사국가고시에 의료인문학 관련 문항을 넣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찬성한다. 잘 된 일이다.
Q: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하는데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A: 학생들이 고통스럽게 생각해선 안 된다. 솔직히 문학이나 역사에 대해 별도의 문항이 포함되는 것은 의대생들에게 부담이 될 거라고 본다.
앞으로 의사생활을 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다루는 게 적당하다고 본다. 의료윤리학이라는 프레임에 맞춰서 그들이 의사생활을 하면서 한번 쯤 생각해 봐야하는 문제를 제시해야 한다.
Q: 점수를 주기 위한 문제가 될 것 같다.
A: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고시에 문항을 넣음으로써 학생들은 한번 더 생각해보는 의료인문학 혹은 윤리적 문제에 대해 시간을 갖게 된다.
의료인문학에 대한 문항은 학생들의 점수를 깎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문학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