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란 기본적으로 관객과의 소통이고 대화입니다. 감독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죠. 의료 현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감독이 의사라면, 관객은 환자입니다."
사람을 만나보면 느껴지는 '기운'이란 게 있다. 강직하든, 우둔하든, 예민하든 사람마다 '색깔'이 있다는 말이다.
이번 인터뷰를 위해 찾은 사람은 바로 한양대병원 이형중 교수. 말쑥한 외모에서부터 인문대생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 교수는 사실 수술 칼을 잡는 신경외과 전문의다.
벌써 3년째 병원소식지에 영화 칼럼을 기고 중인 그는 서점 VIP 목록에 오를 정도로 독서광인데다가 어렸을 때는 취재를 하는 기자가 꿈이었다고도 한다.
의대교수의 영화 사랑 이야기를 들어봤다.
"의대 고단함 잊게 해준 치료제는 영화"
중학교 시절 그의 꿈은 기자였다. 책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글 쓰는 것 역시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단 한마디 말에 꿈을 접었다.
"아버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하시다 귀국하셔서 대뜸 '의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시더라고요. 전문직이 인정받는 때가 온다는 말씀이셨죠. 선뜻 수긍하긴 어려웠어도 결국 의사라는 직업을 택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 때문에 의사의 직업을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의사가 사실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그런 점이 그를 영화로 빠져들게 했다.
"중학교 때 영화 <그리스>를 7번 본 게 생각납니다. 이종 사촌 누나 집에서 잡지
을 보기도 했구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에 나선 것은 의무대에 복무하면서 부터입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의사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삶의 '일탈'이 됐던 것이 바로 영화였다는 것. 그는 <영화의 이해> 등 영화 관련 서적을 보며 이론 공부에 매달렸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하니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보이더군요. 확실히 이론 공부는 필요합니다. 용어는 물론이고 미학이론을 알아야 포괄적이고 입체적으로 영화를 볼 수 있거든요."
영화에 해박하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기고 요청이 들어왔다. 학보 칼럼은 물론이고 2008년부터 병원 소식지에 영화 칼럼을 쓰고 있는 것도 어찌보면 '문대인' 병이 도진 것인지도 모른다.
"의사가 감독이라면 환자는 관객, 소통 시도해야"
그는 요즘도 '문대인 병'을 앓는다. 계속 칼럼과 수필을 써 내는 것. 작년에는 좋은 소식도 들렸다. 2010년 대한중환자의학회가 주최한 수필 공모전 대상, 그리고 한미 수필문학상 장려상을 탔다.
영화 사랑도 계속되고 있다. 틈만 나면 혼자서 영화관을 찾는 것은 물론, 옛날 흑백영화 중 소장가치가 있는 것은 직접 구입해 모아두기도 한다.
고단한 의사 생활에서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는 취미는 아직도 그에게 유효한 '치료제'인 셈. 이런 치료제 덕택에 의사 생활에 더욱 매진할 수도 있다고.
의사로서 영화를 사랑하며 얻은 이점은 무엇일까.
"의료나 영화나 같다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영화라는 게 근본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잖아요. 감독이 의도한 바를 전달하고 궁극적으로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감정의 정화 상태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의료와 일맥상통하는 점이죠."
말이 지닌 의미가 30%라면 행동이나 표정이 지닌 의미는 70%라는 것. 전달과 소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듯 환자에게 소통을 시도하면 결국 좋은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며 "의사도 환자도 모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의료가 바로 좋은 명작이 아니겠냐"며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