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의료분쟁조정법을 제정할 경우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에덴산부인과의원)는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 제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현재 논의 중인 의료분쟁조정법은 분쟁조정 신청인이 민형사 소송으로 가기에 앞서 사전 증거수집기관으로 전락, 분쟁 조정 역할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만약 의료사고로 판단되면 환자는 조정을 받기보다는 보상 액수가 큰 증거자료를 확보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고, 이 과정에서 분쟁 조정은 소송에 필요한 정보만 수집하는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법제이사는 "소송에 대한 증거수집 절차로 악용되기 시작하면 조정의 의미가 퇴색한다"면서 "이를 막으려면 감정결과를 공개하지 않도록 하거나 조정에 불복한 후에도 법원에서 인용되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법의 하위법령이 형평성에 맞지 않을 경우 산부인과 의사들이 조정을 거부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며 의사들의 단체행동 가능성을 시사했다.
의료분쟁조정법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피신청인인 의사가 조정을 거부하고 소송을 선택하면 조정신청은 자동 각하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애써 만든 의료분쟁조정법이 그야말로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한 김 법제이사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의 보상 재원은 국가가 부담해야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의사 무과실로 판정된 것까지 의사에게 재원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면서 "만약 의사가 일부 재원을 부담한다면 현재 법안에는 제외돼 있는 분만과 관련된 산모 및 태아, 신생아의 사망이 반드시 포함돼야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현재 법안 중 손해배상금 납부를 담보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요양급여비를 조정중재원에서 원천 지급하도록 한 것은 환자 측의 채권확보 입장만 대변한 것으로 형평성을 잃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의료분쟁조정법이 아니라 의료분쟁 환자피해구제 특별수사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조정 신청인이 의료기관에서 난동을 피웠을 때 과태료 등을 명시하는 제도적 장치가 분쟁조정법에 전혀 없고, 언제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돼 있어 이를 막는 기능조차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