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병원 개설원장이 의료법 위반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면 행정처분을 감면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24일 사무장병원 개설원장으로 근무한 바 있는 O모 씨가 복지부를 상대로 청구한 의사면허정지 3개월 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이같이 선고했다.
오씨는 2006년 10월 M사 대표이사 H씨와 J요양병원을 공동운영하기로 하고, 대표원장 취업약정을 체결했다.
그러던 중 의료인 자격이 없는 H씨가 개설한 사무장병원에 고용돼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2010년 9월 벌금 300만원 유죄 판결을 선고 받았다.
대법원 역시 올해 3월 O씨의 재항고를 기각해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그러자 복지부는 올해 5월 O씨가 의료기관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의사면허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O씨는 "취업약정을 체결할 당시 이 사건 회사를 의료법인으로, H씨를 의료법인 이사장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환기시켰다.
또 O씨는 "병원 대표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뒤늦게 의료기관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된 사실을 알게 됐지만 당시 의사로서 환자를 방치할 수 없어 계속 근무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취업약정을 체결할 당시부터 의료법 위반 고의가 있었던 게 아닌 점, 의료법 위반행위를 자진해 신고한 점에 비춰 이 사건 처분은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했거나 남용한 위법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O씨의 행위에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취업약정을 체결할 당시 병원 개설자가 의료기관 개설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원고에게 의무 해태를 탓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못 박았다.
다만 재판부는 여러가지 사정을 종합할 때 복지부 행정처분이 지나치게 무거워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했거나 남용했다고 선고했다.
해당 병원의 건물 소유주는 병원이 임대료를 미납하자 공단 지급금 채권을 가압류했고, O씨를 상대로 건물명도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O씨는 2007년 3월 H씨에게 내용증명 우편으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후임 원장의 부재, 입원환자들의 사정 등을 고려해 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와 함께 O씨는 2007년 11월 의협 불법의료센터에 사무장병원에 고용돼 의료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자진 신고하면서 도움을 요청했고, 그로 인해 의료법 위반죄 등으로 형사상 유죄 판결까지 받았다.
O씨는 이 사건 병원을 그만둔 후 의협 불법의료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돼 의사들에게 사무장병원의 폐해를 알리는 홍보활동을 해 오고 있다.
이와 관련 재판부는 "사무장병원의 의료법 위반 사실은 고용된 의사 등의 자진신고가 없이는 쉽게 밝혀내기 어렵다"면서 "따라서 이런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자진신고에 대해 개인이 입게 될 불이익을 감면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최근 주승용, 신상진 의원 역시 의료기관 개설자가 될 수 없는 자에게 고용돼 의료행위를 한 자가 그 사실을 신고하면 자격정지를 감면할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사실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O원장은 사무장병원 원장으로 근무하다 수십억원의 환수 처분을 받았으며, 이 역시 소송을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