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에 소재한 노숙인 사회복지시설을 포함한 여타 시설의 경우 의사가 상주하는 것 자체가 인력 낭비라고 생각됩니다.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한명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서울시에 위치한 노숙인 쉼터에서 근무했던 A씨는 공보의 불합리한 배치와 이에 따른 '관리 사각지대'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공보의의 적정 배치 문제가 단골 소재로 나오고 있지만 자신이 근무하던 지난해 초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말이다.
1980년대 도입된 공보의 제도는 전국 의료취약지역에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를 배치해 무의촌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목표를 가지고 시행된 것.
하지만 제도 도입 30년이 지나면서 중소도시의 민간병원이나 보건단체 등에 배치되는 등 공보의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다.
특히 공보의 관리·감독의 주체가 일선 민간병원이나 보건단체에 맡겨지는 경우 엄연한 공무원 신분이면서도 '복무규정' 대신 해당 기관의 '내부규율'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의나 경고 등 징계권을 가진 해당 기관 직원들의 눈치를 보느라 강압과 폭언에도 제대로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복무규정 대신 직원들 눈치…폭언에도 별다른 도리 없어"
노숙인 쉼터에서 근무했던 공보의 A씨도 비슷한 경우다.
그는 "병가 결재를 요청했다가 멱살을 잡히고 욕설을 듣는 봉변을 당했다"며 이를 녹음한 녹취록을 제공했다.
녹취록을 기반으로 사건을 재 구성해 보면 이렇다.
공보의 A씨는 2009년 11월 18일 병가를 냈고 이튿날 노숙인 쉼터 상급직원인 사회복지사 B씨에게 병가 결재를 요청했다.
사회복지사 B씨는 진단서 등을 요구하며 결재를 거부했고, 이에 공보의 A씨는 공보의 복무지침에 의거 연 6일 이내 병가는 진단서 발급이 필요치 않다고 수차례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B씨는 결재 서류를 손으로 쳐 땅바닥으로 내팽겨 친 후 "증빙서류 갖고 와. 본인은 본인 마음대로 해. 난 내 법규 대로 할 테니까"라고 고성을 내질렀다.
공보의 A씨는 심한 모욕감을 느껴, 대화 내용이 녹음되고 있음을 알리고 반말을 하지 말라고 수차례 요청했으나 무시당했다.
A씨는 결국 결재 요청을 철회하고 근무 장소로 돌아갔지만 뒤따라온 B씨는 "너 이리 나와"라며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고 나가려고 했다.
다른 직원들의 만류로 폭행은 저지됐지만 B씨는 입에 담기조차 힘든 욕설을 퍼부으며 난동을 부렸다.
"관리 사각지대 해소하려면 적정 배치 급선무"
공보의 A씨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정신적 충격과 모멸감으로 사건 직후 극심한 불안과 수면 장애를 겪었다"면서 "한 인간으로서 인권을 유린 당했고, 공보의로서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침해당하고 명예를 실추당했다"고 하소연했다.
A씨는 이후 국민 신문고를 통해 해당 기관의 공보의 배치 취소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는 "서울시 소재 각종 노숙인 시설은 시립 병원과의 연계가 잘 돼 있기 때문에 의사 인력 배치가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 없다"며 적정 배치가 급선무임을 강조했다.
공보의들이 적정한 곳에 배치되지 않는 한 공보의들의 '관리 사각지대'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기동훈 회장 역시 "공보의들이 적정한 곳에 배치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권리 보호가 힘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A씨와 같은 사례를 겪고도 근무지 이동권한과 징계 권한을 가진 해당 기관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그는 "취약지 의료공백을 막는다는 공보의 본래 취지에 부합하는 근무지는 전체의 1/3밖에 안 된다"면서 "인력 낭비를 막기위해서라도 적정 배치에 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밝혔다
기 회장은 "일부 기관 직원들은 마치 공보의를 부하처럼 부리기도 한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적정 배치가 우선돼야 하며, 배치와 관리·감독도 복지부가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 회장은 "공보의 신분을 국가계약직으로 통일하고, 복지부가 배치와 관리, 감독을 맡도록 하는 '공중보건의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국회에서 논의 예정이다"면서 "공보의의 숙원인 법률안이 올해 꼭 통과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