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경기도의 한 펜션에서 일어난 동기생 성추행 사건으로 고려대는 역사상 최악의 한해를 보냈다.
늑장대응을 지적하는 들끓는 여론에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됐고 이로 인해 사상 최초로 의무부총장 후보가 2번이나 낙마하는 대 혼란이 일어났다.
이번 사건은 지난 5월 21일 고대 의대생 4명이 경기도 가평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됐다.
술자리를 갖던 중 여학생 윤 모씨가 방에서 잠이 들었고 동기생인 박 모씨와 한 모씨, 배 모씨는 돌아가며 윤 씨를 성추행하기 이르렀다. 특히 20장이 넘는 사진을 찍고 이를 공유해 충격을 줬다.
이에 윤 씨는 고대 양성평등센터에 이를 알렸지만 조속한 조치가 이뤄지지 못했고 결국 경찰에 이들 3명을 고소하면서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박 씨에게는 징역 2년 6월이, 배 씨와 한 씨에게는 각 징역 1년 6월이 선고되고 이들 3명이 모두 대학에서 출교 당하며 우선 일단락 됐지만 이들의 항소로 사건이 고법에 넘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번 사건은 고대에게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늑장대응 논란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 씨의 고소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이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여론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고대 재학생들은 1인 시위를 통해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출교를 요구했고 포털사이트에는 출교 청원 서명이 1만명을 넘어서며 고대를 압박했다.
하지만 고대는 재판 결과를 장담할 수 없으며 양성평등센터에서 조사중이라는 기계적인 답변만을 내놓으면서 도덕성 논란에 휩쌓였다.
이러한 고대의 태도는 윤 씨의 인터뷰로 급반전됐다. 윤 씨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아 치료중에 있으며 가해자 부모들이 자신의 가족을 협박했다며 고발성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는 여론을 더욱 들끓게 만들었다.
결국 고대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는 동시에 재판이 끝나기 전에 이들 3명을 출교시키며 백기를 들어야 했다.
이 사건의 충격파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당시 학장을 맡고 있던 서성옥 교수가 의무부총장 후보로 인준됐지만 리더십에 의문을 품은 젊은 교수들이 집단으로 반대표를 던져 사상 최초로 후보 낙마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고대의 위상 추락을 우려하는 젊은 교수들은 개혁포럼이라는 독립단체를 만들었고 또 한번 의무부총장 후보를 낙마시키며 신흥 권력을 과시했다.
이로 인해 고대는 수개월 동안 의무부총장과 3개 병원장 자리가 서리 체제로 운영되며 또 한번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결국 개혁포럼의 핵심 인물들이 교수의회를 장악하고 정통 고대 출신인 김린 후보가 의무부총장에 취임하면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실추된 이미지를 복구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고대의대 모 교수는 "사실 고대의대가 태동한 이래 이같은 위기가 있었나 싶다"며 "사실상 모든 교수들이 지금 아차하면 곤두박질 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과연 김린 의무부총장이 얼마만큼 과감한 드라이브로 실추된 위상을 회복시키는가가 관건이라고 본다"며 "우선은 뿔뿔이 찢어진 의대 교수들을 어떻게 규합하는가 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