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지방의 D대학병원 전공의라고 밝힌 의사가 공중전화로 대한전공의협의회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신의 신원이 혹시 탄로 날까 두려워 공중전화를 이용했다면서 동료가 레지던트 선발에서 억울하게 불합격을 했다고 호소했다.
대전협은 해당 병원에 사실확인 공문을 보냈지만 돌아온 답은 '레지던트 선발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였다.
서울의 S병원 인턴들이 전공의 선발과정에 대해 최근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면서 공정하게 레지던트를 뽑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전협 관계자는 26일 "병원이 임의적으로 마음에 드는 인턴, 레지던트를 미리 내정해 놓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하지만 부당대우를 받은 당사자들은 혹시나 불이익이 있을까봐 쉬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고 말했다.
실제 수련의들 사이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선발결과를 받아들었을 때 '어레인지(arrange)' 당했다는 은어를 쓸 정도로 익숙한 일이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는 "대학병원이 아닌 수련병원, 지방대병원일수록 수련의 선발 과정에서 미리 내정해놓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어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서울 A대학병원 교수는 "수련의를 내정하는 것은 사실 병원 규모에 관계없이 어느 병원이나 있는 얘기다. 흔히 말해 인턴을 돌고 있으면 교수가 한명을 찍어 내 밑으로 오라고 지정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그러면 자연스럽게 같은 기수 인턴끼리는 그 과에 지원을 하지 않는 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관행이고 악습인데 의사 사회가 워낙 폐쇄적이다보니 가능한 일"이라고 환기시켰다.
대전협 관계자는 "시험성적이 10점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차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면접점수 때문에 뒤집힌다는 것은 병원이 수련받는 이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혔다.
그는 이어 "강자의 권한을 이용해 횡포를 부리는 병원은 인턴, 레지던트를 뽑으면 안된다"며 "전공의 선발고사 기준을 각 병원이 갖고 있다는 게 잘못이다. 투명하게 하려면 국가가 관리를 하든지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B대학병원 교수 역시 "각 병원마다 수련의 평가 잣대가 다른 것이 문제다. 통일된 평가 잣대가 있으면 계량화가 가능한 만큼 좀 더 합리적으로 전공의를 선발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한병원협회는 수련의 선발에 대한 기본적 가이드라인이 이미 있으며 이를 어디까지 제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을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병원협회 관계자는 "수련의 선발에 대한 기준은 다른 어떤 직종보다도 엄격하다. 하지만 병원의 재량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은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대전협은 "규정을 지키기 않고 전공의에게 부당한 행위를 하는 병원이 적발되면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수련병원 탈락 등의 강경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다면 대전협 자체에서 병원의 관련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