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조사 과정에서 본인부담급 수납대장을 실제 서류 대신 전자문서 형태로 제출하면 이를 '의무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정답은 "인정받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자문서가 의무기록으로 인정받으려면 기록의 수정이나 변형, 추가 사항 등 이력을 표시할 수 있는 전자서명이 포함돼야 하지만 이런 기능이 있는 전자차트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1차 의료기관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전자차트 프로그램은 '전자서명' 기능을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있어 본인부담금 수납대장과 진료비 계산서 등의 실제 문서를 보관하는 등의 주의가 요망된다.
"높은 비용 탓…의원급, 전자서명 쓰는 곳 전무"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복지부 현지조사 과정에서 공인전자서명이 기재되지 않은 전자문서를 제출한 한의원에 업무정지 1년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한의원이 제출한 전산자료는 요양급여기준규칙에서 규정한 전자서명법에 의한 공인전자서명이 기재된 전자문서가 아니다"며 법적 의무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본인부담금 수납대장을 보관하는 대신 전자차트 기록만을 보유하고 있던 해당 한의원은 제출한 전자차트 자료가 법정 의무기록으로 인정받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전자서명 없는 전자차트 기록은 수정과 변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무기록으로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의료계에서도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
30일 주요 전자차트 업체에 문의한 결과 의원에서 쓰이는 전자차트 대부분은 '전자서명' 기능을 제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주로 높은 비용으로 풀이 된다.
A업체 관계자는 "기술적으로 전자서명 기능을 제공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비용이 걸림돌이다"면서 "3차 기관은 대부분 전자서명 기능이 구비돼 있지만 1~2차 기관에서는 전자서명을 쓰는 곳이 드물다"고 밝혔다.
그는 "전자서명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선 한국정보인증원과 같은 인증 기관과 협약을 맺어야 한다"면서 "4~5년 전에 이들 기관으로부터 공인인증서를 구매해서 전자서명 기능을 제공하려 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포기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2차 기관에 전자서명 구축비용에 들어가는 돈은 2천만원 정도. 의원급도 1천만원 이상 비용이 소요돼 실제 전자서명 기능을 구비해 사용하는 곳은 손에 꼽힐 정도다.
A업체 관계자는 "현행 전자차트의 기록은 추후 기록의 수정과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무기록으로 인정받기 힘들다"면서 "서비스 계약 때에는 전자서명 기능이 없다는 사실을 회원들에 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B업체 관계자 역시 "전자서명 기능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비용 문제로 의원급에서는 이 기능을 사용하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3차 기관은 100%, 2차 기관은 80%가 사용하고 있지만 1차 기관은 사용하는 곳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B업체 관계자는 "전자차트 서비스 계약시 전자서명 기능이 없으면 무조건 출력해서 날인을 찍고 보관해야 한다는 사실을 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심평원, 수진자 조회 등으로 차트 신뢰도 점검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전자서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지조사를 나갔을 대 전자차트 기록만을 보유한 채 본인부담금 수납대장이나 진료비 계산서 등을 실제 문서 형태로 가지고 있는 곳이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심평원 관계자는 "현지조사를 나갔을 때 실제 문서 대신 전자차트 기록을 제시하는 곳이 있다"면서 "이런 전자차트 기록에는 전자서명이 없기 때문에 법적 기록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환기시켰다.
그는 "다만 전자서명이 없는 곳이 계속 늘고 있어 전자차트 기록을 모두 불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대신 전자차트의 신뢰도를 점검하는 다양한 방법을 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기관마다, 현지조사의 내용마다 차트 기록의 신뢰도를 점검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주로 수진자 조회나 의뢰가 들어온 항목만 집중 점검하는 방법으로 신뢰도를 확인한다"고 덧붙였다.
현행 의원에서는 전자차트 기록에 의존하기보다는 본인부담금 수납 대장을 기록 보존 연한까지 관리하는 등 실제 문서를 보유하는 것이 만일을 위해 필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