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L산부인과 원장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홀로 분만을 유지하는 산부인과 의사의 고충이 새삼 재조명 되고 있다. 메디칼타임즈는 홀로 어렵게 분만을 지켜가고 있는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 산부인과의 실상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네, 글로리 산부인과입니다." 인터뷰 요청을 위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접수 창구 직원의 목소리 대신 중저음의 남성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전달됐다. 김종석 원장이었다.
"원장님이 직접 전화를 받으시네요"라는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직원이 따로 없으니 제가 받아야죠"라고 답했다.
지난 8일, 김 원장이 알려준 주소대로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에 위치한 작은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다시한번 주춤했다.
접수 창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직원 대신 김 원장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 혹시나 싶어 물어보니 역시나 그랬다. 더 이상의 질문은 그만뒀다.
그렇게 김 원장과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그는 지난 2006년 수도권을 피해 파주시 교하읍에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그는 안동병원 산부인과 과장, 청화병원 진료부장을 지낸 그는 어느날 면역력 저하로 9개월간 휴직한 후 건강상의 이유로 봉직의 대신 개원을 택했다.
시간적으로 육체적으로 좀 더 여유로울 것이라는 기대감에 개원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개원 이후 2년간은 당장 직원 월급이 부족해서, 혹은 생활비가 없어서 추가적으로 대출을 받았다.
월 분만은 5~10건 수준. 산모식사를 위한 직원과 24시간 응급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야간 간호인력 등 인건비를 대려면 벅찼다. 하지만 산부인과의 신념을 버리고 싶지 않아 임신중절수술은 손에 대지 않았다.
개원 3년 후, 조금씩 자리를 잡는듯 했지만 얼마 전, 인근에 대형산부인과가 들어오면서 분만 건수는 5건 이하로 떨어졌고 당직 간호사까지 그만두면서 더 이상 분만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결국 김 원장의 산부인과에는 지난 해 9월 이후 분만이 뚝 끊겼다.
요즘엔 하루종일 진료를 해도 산모 구경을 못하는 날도 있다고 했다. 질염, 방광염, 자궁암 검사를 위해 찾아오는 환자가 전부다. 간혹 산모도 오지만 임신 여부만 확인하고 대형산부인과로 옮겨가기 일쑤다.
외래 환자대기실과 연결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분만실 및 수술실, 가족분만실, 아늑하게 꾸며진 입원실이 펼쳐졌다. 규모는 작았지만 분만에는 부족함이 없없지만 인력난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했다.
김 원장은 "아직도 분만을 접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이라도 당직 간호사 등 간호 인력만 채용하면 분만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한번은 분만을 해야하는데 직원이 부족해 동료 의사 병원에 부탁해서 간호인력을 지원받기도 했다"며 "당직 간호사 3명 중 한명만 빠져도 일이 힘들어 지다보니, 한명이 그만두면 도미노처럼 그만두는 일이 다반사"라고 털어놨다.
그렇게 분만이 끊기면서 병원의 경영상태는 더욱 최악으로 치닫았다. 환자대기실 옆에 위치한 예진실은 전기세라도 아끼려는지 불이 꺼져있었다.
월 수익은 분만할 때보다 1/4로 줄었다. 개원 이후 봉직의 월급보다 수입이 낮았던 상황에서 더 어려워진 것이다.
그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의사들은 다들 부유하게 사는 것처럼 나오는데 남의 나라 얘기"라면서 "집은 병원 근처 아파트 전세이고, 자동차는 10년째 타고 있다. 개원 이후 계속 불어난 빚은 6억원이 됐는데 매달 이자만 낼 뿐 원금은 갚을 생각도 못한다"고 털어놨다.
요즘 김 원장의 하루 평균 환자수는 30명 미만. 월 대출이자 300만원에 월 임대료 340만원까지 감당하고 생활비를 빼고나면 현실적으로 대출금을 갚기란 불가능하다.
직원 인건비라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부인까지 팔을 걷어부쳤다. 부인은 몇 년 전부터 직원이 부족하거나 인건비가 부족할 때마다 산모 및 직원 식사부터 접수 창구를 부인이 맡아왔다.
또한 진료 이외 주사, 채혈, 청소, 분리수거까지 모두 김 원장의 몫이다.
물론 그 또한 돌파구를 모색하기도 해봤다. 산과 동료 의사들과 대형 산부인과를 세워서 다시 분만을 시작하려고 했지만, 요즘 대형 산부인과를 제대로 하려면 100억원 정도는 투자해야한다는 얘기에 엄두도 못냈다.
요실금 진료도 시작했지만, 얼마 후 정부에서 요역동학검사를 해야한다는 급여기준을 추가하면서 포기했다. 빚 6억원에 또 다시 2천만~3천만원하는 장비 구매를 위해 대출을 받는 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피부 레이저 시술도 마찬가지. 비급여 진료로 돌려볼까도 했지만 장비가 고가이고, 전문 진료도 아닌데 하는 게 영 껄끄러워 그만뒀다.
그는 "레지던트 때는 분만의 경의로운 순간을 맛보는 즐거움에 힘든 줄 몰랐는데 막상 개원하고 척박한 개원환경과 마주하니 씁쓸할 뿐"이라면서 "산부인과 의사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개원을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조만간 운정 신도시가 자리를 잡고 대형 산부인과가 들어선다면 더 이상은 병원을 유지하기 힘들지 않겠느냐"면서 "감기환자를 볼 것인지 아니면 힘들더라도 다시 봉직의로 갈 것인지 중대한 결정을 해야할 순간이 조만간 올 것같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경기도 L원장에 대해서도 잠시 언급했다. 여자 의사로서 홀로 분만을 한다는 것도 힘들지만 대형 의료사고가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 또한 은행 빚이 6억원인데 만약 산모 혹은 태아가 사망하는 의료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느냐,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재정적으로도 파산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또 의료사고 발생시 병원 규모에 따라 환자의 태도가 다르다고 했다.
그는 "환자들 중에는 동네병원은 구멍가게로 생각하고 '여기선 그렇게 해도 된다는 식'의 인식이 있는 것 같다"면서 "다른 환자까지 진료할 수 없도록 진료실을 점거하고 원장에게 협박하는 등의 일을 서슴치 않는다"고 전했다.
김 원장은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의료분쟁조정을 통해 최대 보상 액수가 3천만원이라는 데 주목했다.
그는 "아무리 불가항력이라고 해도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떤 유가족이 3천만원에 합의를 하겠느냐"면서 "결국 조정제도를 통해 병원 진료기록을 받은 유가족은 수억원의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산부인과 의사를 더욱 힘들 게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