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의료분쟁조정법이 사문화 위기에 처했다.
이 법의 주체인 의사들이 분쟁조정을 거부하겠다며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오는 4월 법이 시행되더라도 실효성 없는 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지난 7일, 개원의사 대표 단체인 대한개원의협의회와 각과개원의협의회회장단협의회가 분쟁조정 거부에 합세했다.
앞서 산부인과만의 외침에 불과했던 의료분쟁조정법 반대 여론이 이제 의료계 전체의 입장으로 확산된 것이다.
의료분쟁조정법은 환자가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의사가 이를 거부하면 분쟁조정이 진행되지 않는다. 즉, 전체 의사가 분쟁조정 거부 선언을 한다면 사실상 법의 효력이 없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개원가 뿐만 아니라 병원계에도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그 파급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산부인과학회 관계자는 "병원협회 또한 의료분쟁조정법에 대해 반대입장을 같이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면서 "법의 독소조항이 의원급 뿐만 아니라 병원급에서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의료분쟁조정법 사문화 조짐은 의료분쟁조정중재원 조직 구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당초 복지부가 발표한 계획대로라면 이미 조직구성이 완료돼 있어야 하지만,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조직 구성에 애를 먹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조정위원과 내과, 정형외과 등 분야의 감정위원 재공고를 내고 조직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상임위원 또한 지원자가 없어 기간 내에 조직 구성을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산부인과 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체가 이 법에 대한 문제점을 인지한 상황에서 선뜻 나서는 지원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독소조항을 없애기 전에는 의료계의 참여를 이끌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법무법인 세승 현두륜 대표 변호사는 "최근 산부인과 의사의 사망이 잇따르면서 여론이 더욱 악화된 상황"이라면서 "의료분쟁조정법 시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의료분쟁조정법에서 의료사고시 최대 보상액이 3천만원인데, 현실적으로 액수가 너무 적어 이에 수긍할 환자가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결국 분쟁조정 절차는 환자들이 소송에 앞서 필요한 진료기록을 얻는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