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송명근 교수가 개발한 카바수술의 조건부 비급여의 전제는 '전향적 연구'였다.
신의료기술의 안전성, 유효성을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정부가 3년이라는 검증 시간을 준 것이다.
하지만 안전성, 유효성 검증을 주관해야 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제 할 일을 포기하고 있다.
그간 송 교수의 카바수술에 대한 전향적 연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송 교수가 카바수술을 중단한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카바수술을 하면서도 전향적 연구에 참여하지 않는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와 심평원은 이런 상황이 국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방치했다. 그저 위원회만 만들었다 해체하고 다시 만드는 일만 반복했을 뿐이다.
송명근 교수가 카바수술을 대동맥판막성형술로 둔갑시켜 계속 수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보자.
2009년, 심평원에 카바수술의 안전성, 유효성 검증을 위한 '카바수술 실무위원회'가 꾸려졌다.
하지만 송 교수 측이 위원회 위원 구성의 편향성 등을 문제 삼아 연구계획서 제출을 거부하면서 전향적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자 평가연구를 맡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전향적 연구를 포기하고 후향적 연구에 집중했다.
보의연은 2007년 3월부터 2009년 11월까지 서울아산병원과 건국대병원에서 카바수술을 받은 환자 397명의 의무기록을 후향적으로 분석한 결과 15명이 숨지고, 절반이 넘는 202명에서 부작용이 발견됐다는 보고서를 실무위에 제출했다.
이를 근거로 실무위원회는 '수술중단' 필요성을 보건복지부에 보고했다.
송 교수는 즉시 반박 기자회견을 열고 "보의연의 연구결과는 터무니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사기"라면서 자료가 조작됐다고 연구절차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결국 복지부는 자신들이 설립한 정부기관인 보의연의 연구결과를 수용하지 않았다.
고작 심평원 의료행위전문평가위원회(의평위) 산하에 '전문가 자문단'을 구성해 송 교수 주장과 보의연의 연구결과를 비교하도록 한 게 전부였다.
결과는 보의연의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응증이 안되는 환자를 수술했고, 심각한 부작용도 나타났다는 결론이었다.
의평위는 작년 1월 "카바수술이 기존에 검증된 대동맥판막치환술에 비해 안전성·유효성이 낮은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도 의평위는 보의연 연구가 단기간의 후향적 추적연구이고, 중증도가 보정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비급여 기간 동안 안전성·유효성 검증에 필요한 전향적 연구를 시행하자는 결론을 도출했다.
그러자 복지부는 조건부 비급여고시를 한층 강화했다. 전향적 연구를 하지 않으면 비급여를 산정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심평원은 작년 6월, 또다시 전향적 연구를 관장할 '카바수술 관리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전향적 연구 대상 환자와 질환 범위를 정했다.
그러나 송명근 교수는 위원회 구성이 편향적이고 수술 적응증 범위를 너무 제한했다며 또다시 전향적 연구를 거부하고 나섰다.
그리고 카바수술을 대동맥판막성형술로 이름을 바꿔 계속 하고 있다고 폭탄선언했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조건부 비급여 고시 1호가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큰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심평원은 흉부외과분과위원회에서 카바수술을 대동맥판막성형술로 바꿔 청구한 것을 확인했다.
대동맥판막성형술로 진료비 청구가 들어온 79건 중 11건을 흉부외과분과위원회에 우선 자문한 결과 모두 카바수술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고시 위반을 의미한다.
그러나 급여환수와 같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심사를 보류시켰다. 복지부 역시 고시 위반을 모른 채 하고 있다.
한 대학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평원이 심의결과를 놓고 더이상 액션이 없다"고 질타했다.
제주의대 배종면 교수도 "심평원은 계속 위원회를 만들어가면서 보의연이 한 평가를 반복만 하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배 교수는 과거 보건의료연구원이 수행한 카바수술 평가연구를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전문가 자문단의 심의 결과에서도 볼 수 있듯이 보의연 연구가 제대로 됐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보의연이 근거를 만들었다면 심평원은 이제 가치평가를 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어떤 치료법이 국민에게 유용한 것인지 아닌지 가치를 따지는 것은 심평원이 해야 할 일"이라며 "카바수술을 놓고 심평원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심평원 관계자는 "앞으로 소송으로 갈 수도 있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돌다리도 두들겨보는 심정으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다"며 "빠른 시일 내에 대동맥판막성형술로 들어온 부분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