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골목상권을 휩쓸듯이 의료시장도 영리법인 의료기관이 들어오면 동네의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의협 정기대의원총회 분과토의에 참석한 한 대의원의 말이다.
그는 서울시의사회가 상정한 의무법인 도입 관련 안건에 대해 반대했다. 여기서 언급된 의무법인이란, 일반인의 자본참여를 제외하고 의료인의 자본참여만 허용하는 방식에 불과했지만 그는 심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분과토의에 참석한 상당수 대의원도 우려를 제기했다.
결국 '의무법인 도입'에 대한 선행 연구에서 '도입'이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단순히 의무법인에 대한 선행연구를 진행하기로 정리했다.
대의원들은 '도입'이라는 단어를 넣느냐, 빼느냐를 두고 민감하게 반응했다. 당장이라도 영리법인을 허용할 것처럼 우려했다.
논의 도중에 경만호 의협회장은 "이번 연구는 의료시장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것으로 찬반을 논의하자는 게 아니라 단지 연구를 하자는 것이므로 이를 막을 필요는 없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대의원들을 우려를 잠재우지는 못했다.
의무법인 도입에 대해 논의한다고 당장 추진되는 것이 아님에도 대의원들은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할까.
잠시 유통산업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최근 정부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확산으로 존폐위기에 처한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 SSM 의무휴업을 도입했다.
정부는 시장경제에 개입하면서까지 전통시장을 살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전통시장을 살릴 수 있을 것인지는 의문이다.
소비자들은 이미 SSM의 편리성에 길들여진 상황에서 뒤늦게 정부가 긴급처방을 내리는 것은 한계가 존재한다.
의료시장 또한 마찬가지다. SSM의 확산이 재래시장의 쇠퇴를 가져왔듯이 의료시장에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그 파장은 상당할 것이다.
유통산업의 사례를 보면 의료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대충 이해가 간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의료시장에 영리법인이 도입되면 뒤집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한번 뚫린 SSM시장은 없앨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