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심평원, 대한병원협회, 한국보건행정학회 등은 공동주최로 '유럽·미국·호주의 DRG 지불제도 운영경험과 시사점'이라는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을 열었다.
이날 기조연설은 유럽연합 산하 'EuroDRG Project'의 책임자이며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인 'Health Policy'의 대표 편집장인 독일 베를린공대 레인하르트 부세(Reinhard Busse) 교수가 맡았다.
레인하르트 부세 교수와 만나 독일에서의 DRG 제도 운영 경험과 한국의 정책 과제에 대한 시사점을 들어봤다.
▲DRG가 도입되면 의료의 질이 저하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DRG 도입 후 행위별수가제에 비해 의료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모든 나라의 이슈였다. 상당수 의사들은 고비용, 많은 행위가 높은 의료 서비스를 보장한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진료비를 벌기 위해 서비스를 과잉으로 공급하면 결코 질을 높이지 못한다. 행위별수가제에서 과다하게 공급된 서비스를 제거하면 오히려 질이 높아질 수 있다. 과다한 진료를 줄여 좋은 결과물을 도출하는 것이 DRG 제도의 핵심이다.
행위별수가제에 비해 서비스 질이 나빠지지 않으면서 행위량의 거품을 줄이는 것이 DRG의 핵심이다. 고가의 치료재료를 썼다고 해도 서비스 질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골치환술에서 5천달러 짜리 치료재료를 쓰나 1만달러를 쓰나 질의 차이가 없을 수 있다.
▲독일에서 DRG를 도입할 때 의료계의 반발은 없었나
=DRG를 도입한 많은 나라에서도 시행 당시에는 잃을 게 많다는 생각이 팽배했다. DRG는 전체적으로 총액 자체가 깎인다는 개념이 아니다. 독일은 DRG 도입 당시 돈을 깎는다는 방향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병원들은 불안해 했지만 정부는 일정 기간 지나면 받아야 할 금액을 다 받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DRG 도입되면 첫 해는 100%에서 99%를 받게 한다고 했다. 매년 수가 조정을 하겠지만 급격한 소득 감소는 없다고 설득했다.
DRG 도입 전에는 수가를 동결했고,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는 자발적으로 동참한 기관에 인센티브를 줬다. 독일에서는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이 없었던 셈이다.
▲한국에서는 DRG 도입에 따른 의료계의 반발 목소리가 높다.
=의료제공자 입장에서 DRG 도입시 금전적 손실을 우려해 반발하는 것은 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사회적인 견해에서 보면 이는 합당한 것이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보건 시스템은 진료자율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진료 과정을 표준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병원 경영 투명성을 높여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 사회가 알게 하려는 것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DRG는 같은 진단을 받은 사람들의 진료 후 결과에 대한 병원별 비교가 가능하다(객관화 한다)는 장점이 있다.
▲선행적으로 DRG를 도입했기 때문인지 장점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학자로서 DRG의 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DRG 자체의 장·단점을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점은 바로 환자분류체계 등 DRG 제도를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의 문제다.
예를 들어 환자분류체계를 너무 엉성하게 하면 세밀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중환자는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반면 분류를 너무 세밀히 하면 행위별수가제와 별반 차이가 없어진다. 결론은 디자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 포괄수가제의 영역이 늘어나 보험영역이 넓어지면 재정 부담이 우려되기도 한다
=만약 비급여라고 해도 효과적이라면 급여에 포함돼야 한다. 비급여로 제공되는 많은 의료행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의사들이 불필요한 진료 서비스를 만들어 낸 것일 수도 있다. 심근경색으로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많은 서비스 중 꼭 필요한 것을 받게 하는 것이 DRG제도다.
▲독일에서 DRG 도입 당시 불만을 가졌던 직역단체는 현재 만족하는 편인가
=독일에서 DRG를 도입한지 8년이 지났다. 매년 진료과목별로, 병원별로 DRG 개선 사항을 접수받는다. DRG 인스티튜트라는 기관이 불만사항을 검토해 제도에 반영되도록 하고 있다.
불만 사항 등을 통해 매년 제도가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큰 불만 사항은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DRG 수가를 조정할 때 정부의 입김이 더 강해질 것이란 우려가 있다. 독일은 어떤 방식으로 수가를 조정하나
=독일은 정부가 수가를 통제하지 않는다. 질병금고(보험자)와 병원협회가 함께 수가 적정성을 결정한다. 질병금고는 돈 내는 사람을, 병원협회는 의료제공자를 대변한다. 이 둘이 합의하면 정부는 끼여들지 않는다.
가격은 비용을 통해서 산정된다. 병원이 절반은 이득을 보고 절반은 손해를 본다고 하는 것처럼 절충점을 찾아간다. 만약 병원이 진료비가 떨어져 서비스를 줄인다고 하면 환자들은 그 병원을 찾지 않는다.
▲한국은 7월부터 DRG의 병의원급 확대 적용을 시작으로 향후 신포괄수가제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조언해 줄 말이 있다면
=세가지다. 첫째 모든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DRG를 확대해야 한다. 둘째 3년 기간 정해 고비용 병원은 스스로가 효율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DRG에 포함하지 않았던 신의료기술을 어떻게 안고 갈 것인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