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정심 퇴장→파업 경고→전국 의사 반모임→대규모 항의 집회..."
의료계가 그간 의료법 투쟁 등 중요한 현안에 대처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그러나 의협 노환규 집행부는 이러한 방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임박한 포괄수가제에 맞서 '대국민 여론전'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꺼낸 것이다.
22일 열린 대한의사협회의 포괄수가제 기자회견에서는 '파업' '건정심 탈퇴' 등 강경한 발언 대신 '국민' '반성' 등의 단어가 주를 이뤘다.
국민에게 읍소하는 모양새다. 노환규 회장이 취임 첫날부터 강조한 '의사 책임론'도 이날 또 언급했다.
그러면서 포괄수가제가 국민에게 결코 유리한 제도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국민이 원한다면 의사들도 포괄수가제를 받아들이겠다고 몸을 낮췄다.
전날 긴급 상임이사회에서까지 거론되던 건정심 탈퇴, 헌법 소원 등의 강경책은 쏙 들어갔다.
의협이 '대국민 여론전'으로 방향을 튼 것은 현재 건정심 구조에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건정심 탈퇴 등 초강경책도 결국 정부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만성질환관리제, 영상장비 수가 인하 등 각각의 현안을 개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한계도 감안했다.
보다 근원적으로 잘못된 의료제도를 국민에게 알려,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를 압박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포괄수가제의 경우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때 결코 유리할게 없다는 자신감도 묻어 있다
이러한 방침에 따라 노환규 회장은 직접 일간지, 라디오 인터뷰 등을 거의 매일 소화하고 있으며, 이날은 모 일간지에 '대한의사협회장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포괄수가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전면광고까지 게재했다.
의협 관계자는 "노 회장이 일정이 되는대로 인터뷰를 통해 포괄수가제의 실상을 국민에게 알리려고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복지부 장관에게 공개적으로 거듭 포괄수가제 공개토론을 제안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의협 이재호 의무이사는 "국민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포괄수가제를 막을 수 없다"면서 "보다 근본적인 관점에서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넓히려는 활동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국민 여론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는 24일 건정심에서 포괄수가제를 강행처리할 경우 퇴장을 비롯한 약간의(?) 퍼포먼스도 계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이날 기자회견에서 건정심 탈퇴 등 건정심 구조 개혁의 여지를 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대국민 여론전을 시작으로 미래를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 비판도 나오고 있다.
대국민 여론전만으로 당장 7월로 다가온 포괄수가제 확대를 막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의사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에 불편해 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지역의사회 임원은 "국민에게 알리는 방식으로 당장 효과가 날 수 있느냐"면서 "제도가 시작되면 되돌리기는 어려운데, 일단은 시행을 막기 위한 더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