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는 의료계의 과거의 다양한 모습을 짚어보고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Back to the 의료계'를 연재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첫 아이를 안았을 때와 같은 환희였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이 12년전인 2000년 '드디어' 개원 했을 때, 개원과정에 처음부터 관여해온 시설운영팀 정복희 팀장은 감회를 이처럼 밝혔다.
일산병원이 2000년 3월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자병원으로서 개원하기까지는 험난했다.
1998년 개원이 목표였지만 정치권과 의료계의 거센 반대로 개원이 무기한 미뤄졌다. 1996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병원건립추진본부는 불투명해진 개원에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정복희 팀장은 "보통 새병원 건립을 위해 운영되는 추진단은 길게는 2년반 유지된다. 일산병원은 1998년 개원이 무산되면서 2000년까지 추진단이 이어졌으니 보통보다 두배나 더 긴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16년전 약 60여명으로 꾸려진 추진본부는 지금의 알코올전문병원인 카프병원 자리에 임시로 지어진 퀀셋(Quonset) 막사에서 생활해야 했다.
겨울에는 한파 때문에 화장실 물이 얼어서 건축현장과 가까운 지하철역 화장실을 이용하기도 했다.
60명 추진단원 중에는 건축과는 전혀 상관없는 전문의, 간호사 등 의료진도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재활의학과 김성우 교수, 영상의학과 양희철 교수는 일산병원 추진본부 출범부터 함께해 온 원년 멤버다.
병원 개원 전 의료진은 청진기 대신 길이를 재는 축척자를 갖고 다녀야 했다. 콘센트, 세면대 위치 하나까지도 의료진이 직접 설계도면을 보면서 개입했다.
윤수진 수간호사는 당시 사용했던 축척자를 꺼내보였다.
윤 수간호사는 "의료진이 병원 건립에 말 그대로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일산병원이 최초일 것"이라며 "건축하는 사람은 의료현장을 모르기 때문에 의료진이 직접 의료기기 등이 어디로 들어가야 좋을지 도면에 표시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개원이 2년이나 연기되면서 수술을 하는 외과계 의사는 오랜 기간 수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2명이던 간호부는 4명씩 3개월간 돌아가면서 무급휴가를 가기도 했다.
강중구 진료부원장은 일산병원 10년사를 통해 "현장 임시 사무실은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새기 일쑤였다. 국회 공청회에서는 일산병원이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생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기가 막혔다. 그만두더라도 개원이나 보고 그만두자는 오기가 생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진단검사의학과 송좌근 수석기사는 "첫삽을 뜰 때부터 추진본부가 임시사무실에 들어와서 함께했다. 의료진의 판단이 바로바로 반영됐다. 준비할 기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늦춰진 2년이라는 시간동안 국내외 병원들을 벤치마킹해 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 모델 병원, 동시에 경쟁에 뒤쳐져도 안돼"
우여곡절 끝에 개원한 일산병원은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수가 내에서 적정진료를 하고, 국가가 수행하는 의료 정책의 시범 대상이 돼야했다.
동시에 주변에 포진해 있는 국립암센터, 명지병원, 일산백병원 등 종합병원과의 경쟁에서 뒤쳐져서도 안된다.
그 성과는 나타나고 있다. 외래환자는 하루 평균 3200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연간 100만명을 넘어섰다.
윤수진 수간호사는 "일산병원은 현재 수가 하에서도 병원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모델 병원이다. 치료재료를 쓸 때도 꼭 써야 하는 게 아니면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정책적으로 해보자 하는 사업이 있으면 시범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간병서비스 제도 시범사업이나 4인병실을 기준으로 운영하는 것처럼 다른 병원에서는 재정문제 때문에 선뜻 할 수 없는 것도 일산병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있다"고 덧붙였다.
일산병원은 개원 1년후부터 2년에 걸쳐 환산지수 및 상대가치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산출하기 위해 원가계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후 상대가치점수 재평가 및 환산지수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연구기관에 제공하고 식대, 초음파, MRI 등 비급여 수가의 급여화와 관련한 연구에 필요한 원가자료 등을 제공하기도 했다.
2007년 2월부터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공공의료 정보화 시범사업기관으로 지정돼 평생전자건강기록(EHR)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했다. 신포괄수가 확대 모형개발 시범병원으로 지정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의약품 처방조제 지원시스템(DUR) 시범사업, 완화의료에 대해 건강보험수가를 시범 적용 평가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