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직접 진찰하고도 병원 직원이 다른 의사의 명의로 진단서를 발급하는 바람에 면허정지처분을 받는다면?
그것도 법원 1심, 2심이 모두 행정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은 없을 것이다.
대법원은 의사면허정지처분을 받은 K모 의사에 대한 행정처분을 취소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은 지난 2007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정형외과 부원장으로 근무한 K씨는 당시 교통사고 환자 4명을 진료하고 C원장 명의로 진단서를 발급했다.
당시 C원장은 해외여행중이었고, K씨 혼자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복지부는 2010년 3월 K씨가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3호를 위반해 진단서를 거짓으로 작성했다며 의사면허자격정지 1개월 15일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K씨는 "환자를 진료하고 진료 내용에 따라 진단서를 발급했는데, 직원의 실수로 컴퓨터에 저장된 C원장 명의의 양식으로 진단서가 발급된 것"이라면서 "이는 진료내용이 허위로 발급된 게 아니어서 처분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의사가 직접 환자를 진찰하지 않은 채 진단서를 발급하거나 직접 진찰을 했더라도 허위로 진단내용을 기재한 진단서를 발급한 게 아니어서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3호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3호에 따르면 진단서·검안서 또는 증명서를 거짓으로 작성해 내주거나, 진료기록부 등을 허위로 작성한 때에는 1년 이내의 범위에서 의사면허정지처분을 한다.
1심과 2심 재판부도 K원장의 손을 들어줬다.
의료법 제17조 제1항은 의료업에 종사하고 직접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아니면 진단서 등을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 서울고법은 지난해 1월 "이 규정은 직접 환자를 진찰하거나 검안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가 진단서 등을 진단내용에 따라 작성해 환자에게 교부하도록 하는 취지"라고 환기시켰다.
직접 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의사 명의로 진단서를 작성, 교부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서울고법은 "직접 환자를 진찰한 의사가 자신이 아닌 다른 의사 명의로 진단서를 작성, 교부한 경우에 대한 의료법상 별도의 금지・제재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재판부는 "형법상 허위 진단서 작성죄는 의사가 그 내용이 허위라는 주관적 인식 아래 진실에 반하는 진단내용을 진단서에 기재할 경우 성립되는 범죄인데, 이 사건 각 진단서에는 진실에 반하는 진단내용이 기재돼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직접 환자를 진찰하고도 C원장 명의로 진단서가 발급된 것은 이 사건 진단서 외에는 없고, 이 사건 전후 발급된 진단서는 모두 원고의 명의로 발급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복지부 행정처분을 취소하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했다.
원심이 의료법 제66조 제1항 제3호 소정의 '의료인이 제17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진단서를 거짓으로 작성해 내주는 행위'의 적용범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조항에는 환자에 대한 병명이나 의학적 소견 외에도 진단자인 의사의 성명·면허자격과 같은 작성 명의를 허위로 기재하는 경우도 포함된다고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