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내려 피켓을 들고 광장으로 속속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가 익숙한 휘장을 달고 있었다. 우리가 백의의 천사라 부르는 간호사들이었다.
광장에 모여든 인파는 어림잡아도 수천명. 서부광장을 가득 메우고서도 인근 공터까지 피켓이 이어졌다.
그시각 천안 버스터미널. 이곳에는 녹색 옷을 맞춰 입은 또 다른 인파가 가득했다. 그들이 어깨에 맨 띠에는 '간호조무사들의 눈물을 닦아 주세요'라는 글씨가 채워져 있었다.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 모여든 이들은 각기 다른 목소리를 냈다. 부르는 이름은 같았다. 바로 민주통합당 양승조 의원이었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양승조 의원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고, 다른 쪽에서는 양승조 의원을 지지했다.
이들이 천안시에 모여든 이유는 같았다. 바로 양승조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법 일부 개정안 때문이다.
양승조 의원 등 12명의 국회의원은 최근 간호조무사 명칭을 간호실무사로 변경하고, 현재 자격인 것은 보건복지부 장관 면허로 변경하는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대해 천안역 서부광장에 모인 간호사들은 국민들을 우롱하는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성명숙 간호협회 회장은 "양승조 의원이 간호조무사를 마치 간호사처럼 포장해 국민건강을 우롱하고 있다"면서 "이는 간호사를 비롯한 병원 노동자의 임금을 낮춰 병원의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법안"이라고 밝혔다.
지방에서 올라온 한 간호대 학생은 "누구의 압력도 없이 이 자리에 나왔다"면서 "도대체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면허를 받고 싶으면 간호대학에 입학해 정식으로 교육을 받으면 될일 아니냐"며 "정규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간호조무사들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간호사와 관계없는 투쟁으로 입법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순심 간호조무사협회 회장은 "의료법 개정안은 간호조무사를 실무사로 명칭을 바꾸는 것과 당초 장관 면허로 환원해 달라는 것인데 간호사와 하등 관계가 없다"면서 "하지만 간협은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간호조무사가 간호사가 된다는 터무니 없는 말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간호조무사도 간호사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 간호조무사는 "나도 간호사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은 간호조무사"라며 "간호조무사, 간호사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간호사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간조'라 불리는 사회적 편견을 없애고 싶은 것일 뿐"이라며 "이 마저도 이해를 못하는 것은 너무 속좁은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이렇게 맞불을 놓은 두 단체였지만 이날 정면 충돌을 일어나지 않았다.
간호협회가 먼저 집회신고를 하면서 부성동 사거리 양승조 의원 사무실까지 가두 행진했지만 간호조무사협회는 이 때문에 가두행진이 저지됐다.
이에 따라 간협은 1시간여 가두행진후 양승조 의원 사무실 앞에서 다시 투쟁결의문을 낭독했고 간호조무사협회는 천안 IC인근 하늘공원 앞마당에서 집회를 마무리한 뒤 해산했다.
하지만 천안시를 마비시킨 이날 집회는 시민들에게 크게 다가가지는 못한 듯 했다.
가두행진을 따라가며 사진을 촬영하는 기자에게 대다수 시민들은 조용히 다가와 같은 질문을 쏟아냈다.
"여기 있는 사람들(간호사)과 저기 있는 사람들(간호조무사)이 다 간호사죠?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