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기도 군포의 주공 아파트 단지.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부터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는 유모차의 행렬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독감 예방 접종이 이뤄지고 있는 관리사무소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예진표를 작성하는 사람들, 대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흰색 가운을 입은 한 명의 의사와 두 명의 간호사가 쉴새 없이 주사를 놨지만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얼추 계산해도 30분에 100여명은 될 듯 싶었다. 이른바 1만 5천원짜리 '덤핑 단체 접종'의 위력이다.
두명의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고 온 모 학부형은 "인근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맞으려면 최소한 2만~3만원은 줘야한다"면서 "흔치 않은 기회에 접종을 할 수 있게 돼서 만족한다"고 밝혔다.
이날 독감 단체접종을 추진한 곳은 인천 소재 S의원. 불과 한달전 영등포구의 한 대형교회에서 덤핑 접종을 했다가 지역의사회로부터 고발 조치를 당하는 곤욕을 치른 곳이다.
S 의원 관계자를 만나 '덤핑 단체 접종'을 하는 이유를 묻자 "수익 사업이 아니라 환자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면서 "지역의사회에서는 마치 돈 때문에 하는 것처럼 매도하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4천원에 들여온 백신 가격에 세금과 인건비, 차량 이동비 등을 제외하고 나면 사실상 수익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
그는 "보건소에 사전 단체 접종 신고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서 "원래 공익 목적으로 7천원에 접종을 하려고 했지만 보건소 과태료 문제로 1만 5천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군포시 보건소는 접종 의료행위를 불법의료행위로 간주해 과태료를 부과하고 예방접종을 실시한 S의원을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하겠다는 방침인 것.
S의원 관계자는 "의료법에 따르면 '의료업'은 의료기관을 개설한 자만이 하도록 돼 있다"면서 "하지만 군포 보건소는 모든 '의료행위'를 의료기관 내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해석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불법 의료행위로 간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도 단체 접종 건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면서 "민원을 넣는 것은 사실 지역 의사들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역 주민이 원하는데도 군포 보건소가 공익 사업을 막는 이유는 지역 의사들의 이목이 두렵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결국 주민들은 7천원짜리 접종비에 8천원짜리 과태료 비용을 물어가며 접종을 받는 셈"이라고 혀를 찼다.
그는 이어 "보건소도 간호사들을 채용해 아파트 경로당을 순회하며 단체 접종을 하는데 개인 의원만 안전성 우려 등을 내세워 접종을 막고 있다"면서 "모 보건소는 전기냉장고 대신 아이스박스에 백신을 넣고 다니는 것도 봤다"고 지적했다.
지역 의사회에 대한 서운함도 묻어났다.
그는 "올해는 백신 가격이 4000~4500원 정도로, 지난해 대비 절반에 불과한데도 일선 개원가에서는 백신 접종비가 내려가지 않고 있다"면서 "가격을 담합한 사람들은 놔두면서 수익도 안남기고 접종을 하는 사람은 고발을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의사로 추정되는 20~30명의 사람들이 검은 넥타이를 매고 접종 장소를 둘러싸 위압감을 준 적도 있다"면서 "치졸한 행태 대신 무엇이 진정으로 환자를 위한 길인지 고민해 봤으면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