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의 현실이 지금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28일 코엑스 컨퍼런스룸. 7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룸에는 9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년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흉부외과개원의협의회 차기 회장을 뽑는 중요한 자리였지만 썰렁하다 못해 '휑'한 분위기로 총회가 시작된 것.
무안한 정적을 깨뜨린 박강식 회장은 "흉부외과의 현실은 여기 앉아있는 사람들의 숫자가 보여주고 있다"면서 "대학교수들도 우리의 어려움을 잘 모른다"고 꼬집었다.
이날과 같은 흉부외과개원의 추계학술 강좌 겸 총회 자리에 강연자로 모시려 해도 '절대' 안 온다는 것.
일단 오기라도 하면 개원가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텐데 만날 기회마저 없으니 소통이 자연스레 막히고 있다는 소리다.
서운함의 표현은 계속 이어진다.
박 회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는 괜찮았지만 중후반으로 넘어서면서 경제도 어려워 지고 배출되는 의사 수도 늘면서 흉부외과의 설 자리가 좁아졌다"면서 "전공의 지원도 별로 없는 형편에 학회에서의 노력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차기 회장에 선출된 김승진 회장도 '감사 인사'를 '어려움 호소'로 대신했다.
"타과에서도 우릴 무시한다"거나 "바보가 아닌 이상 돈 벌려고 흉부외과에 오지는 않는다" "의사회 통장에 250만원이 전부다" 등 그의 말을 듣노라면 흉부외과가 처한 현실에 새삼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흉부외과의 어려움은 기자들에겐 진부한 소재다. 하소연식의 기사를 썼다가는 발행 보류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흉부외과의 경영난은 지금까지 고질병처럼 치유되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의 문제라는 소리가 된다.
흉부외과 총회를 참관하며 느낀 감정은 이렇다. 정부가 이렇게 생명을 다루는 과를 홀대할 수 있냐는 것.
지난 7월엔 정부가 흉부외과, 외과 등 전공의 지원 기피과에 대한 수련보조수당을 폐지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달엔 지원 기피현상이 심각한 외과계의 내년도 레지던트 정원이 대축 감축된다는 '비보'도 잇따랐다.
과연 정부가 기피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자연스레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
결국 '기피과'냐 '선호과'냐를 결정 짓는 것은 수련보조수당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적정 수가를 인정해 주느냐의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김승진 차기 회장의 "바보가 아닌 이상 돈 벌려고 흉부외과에 오지는 않는다"는 말은 수가가 낮은 데 누가 오겠냐는 말과 동의어다.
최근 '정재영'이 지고 '마방진'이 뜬다는 소리를 얼핏 들었다. 정재영이 한창 잘 나갈 때 모 영상의학과 교수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넌지시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도 이렇게 잘 나가는 시대가 올 줄 몰랐어."
흉부외과가 뜨는 날은 언제 올까.
총회가 끝나자 9명의 회원들은 근사한 와인바 대신 곱창집으로 무거운 걸음을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