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약 급여화로 촉발된 한의사들과 한의사협회의 갈등이 전 경만호 의협회장과 의사 회원들간의 내홍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한의사들의 직선제 전환 요구와 한의협 회장의 협회비 횡령 고발은 과거 의사협회도 똑같이 겪었던 문제들.
임기를 얼마 안 남기고 터진 회장의 퇴진 요구에 이어 회관 점거까지 판박이다.
한의사평회원협의회, 한의계판 '전국의사총연합'?
사태의 발단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치료용 첩약에 대해 한시적(3년)으로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시범사업을 하면서부터다.
한의사들은 치료용 첩약 사업이 회원들의 동의 없이 진행됐으며 특히 시범사업에 약사와 한약사들이 참여하면 한의사의 진단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대규모 긴급 총회를 개최하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의대생과 일반 한의원들로 구성된 한의사평회원협의회(한평협)는 집행부의 퇴진과 함께 급기야 회관을 점거, 무기한 점거 농성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해 7월 의료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전국의사총연합 회원 30여명은 경만호 전 의사협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회장실을 점거하고 집기를 훼손하다가 경찰까지 출동하는 일이 벌어진 것.
협회비 횡령 고발 건 역시 의료계와 한의계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일선 한의사 120여명은 28억원의 한의약육성발전기금 횡령 혐의로 김정곤 한의협 회장을 고발했다.
고발인들은 "김정곤 회장이 한의협 예산과 별도로 책정된 한의약육성발전기금에서 1년에 약 9억원씩 3연간 28억원을 횡령했다"면서 "떳떳하다면 회비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압박하고 있다.
경만호 전 의협회장도 의사 341명이 제기한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용역비 횡령 고소건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한의사들의 직선제 전환 요구 또한 대다수 회원들의 민심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의 표출. 한평협은 긴급총회 투표를 실시해 직선제 안건을 가결시켰다.
구세대 VS 신세대 "먹고 살기 어려운데 선배들은…"
일각에서는 위계질서가 뚜렷한 한의계에서 젊은 세대가 구세대에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심각한 생존의 기로에 내몰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평협 구승표 회장은 "의료계가 겪었던 내분과 비슷하게 한의계도 그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면서 "과거에 만들어진 정관 등을 개혁해 실질적인 협회의 주인이 회원들이 되도록 하려는 운동에서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곤 회장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기존 세대들과의 대립각을 세우는 것에 부담감이 있다"면서 "다만 전 회원의 권익 보호를 위해 투쟁으로 개혁의 구심점을 삼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한평협의 구성원들은 30~40대의 젊은 한의사들. 1천여명의 한의대생을 포함해 긴급총회에 집결한 5천여명의 한의사들의 대다수는 30~40대의 젊은 의사들이 차지하고 있다.
기존 구태를 벗고 새로운 질서를 부르짖는 한평협은 사실상 한의계판 '전의총'인 셈.
회관점거 농성을 하던 한 회원은 "천연물신약, IMS 의료기기 건도 그렇고 기존 세대의 잘못으로 뺏긴 게 너무 많다"면서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서 농성을 하는게 아니라 정말 살고 싶어서 하는 어쩔 수 없이 투쟁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