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개원만 하게 해주십시오.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비가 내린 3일 강동구 길동 대로변에는 현수막이 붙었다.
현수막에는 "석면 폭탄 웬말이냐! 길동 주민 다 죽인다!"는 섬뜩한 문구가 지나가는 사람의 눈길을 잡아 끌고 있었다.
논란의 주인공은 현수막 뒷편 D건물에 개원 예정인 3명의 정형외과 의사들이었다.
10월에 임대차 계약을 맺고도 두달간 인테리어 공사를 한 기간은 겨우 4일.
업체를 통해 적법하게 철거 작업을 했는데도 민원인들이 "석면이 날린다"고 주장하며 집단 민원을 넣는 바람에 손도 못쓴 채 임대료만 날려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논란의 시작은 정형외과 의사들이 1층에서 3층까지 3개 층을 임대하기로 지난 10월 본계약을 체결하고,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건물 4~5층 A요양병원에서 환자 두 명이 내려와 "시끄럽다"며 심한 욕설로 공사 중단을 요구한 것.
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4일간 공사를 중단하며 소음방지공법을 쓰기로 하고 요양병원 측에 양해를 구했지만 11월 1일이 되자 요양병원에서 다시 환자 3명이 내려와 욕설을 퍼부으며 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심지어 이들은 80대의 건물관리소장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경찰에 고소까지 했다.
민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엔 요양병원 환자의 보호자가 나서 '석면' 문제를 꺼집어냈다.
그러자 강동구청에서 "석면 관련 민원이 접수됐다"며 현장을 방문했지만 정상적으로 제출된 적법한 석면조사 결과를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런데도 환자 보호자는 다시 노동부와 정부기관 곳곳에 공사 중 석면이 나온다면서 민원을 넣어 현장 조사를 나오게 했다.
개원의 꿈에 부풀었던 박 모 의사는 "철거 업체를 통해 적법하게 공사를 진행했지만 졸지에 가해자로 몰려 손도 못쓰고 있다"면서 "공기 질 측정 결과까지 공개했지만 끊이지 않는 집단 민원에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됐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달까지 공사가 완료되지 않으면 인건비는 물론 한달 임대료로 수천만원씩 내야 하는데 민원으로 의료기기 리스 계약까지 파기될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 "피해자인데도 마치 악덕 의사인 것처럼 알려질까봐 두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고용노동부 감독관도 1층과 2층에서는 석면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과를 오늘 내놨다"면서 "내일부터 공사를 재개하려고 하는데 이젠 어떤 민원에 시달릴지 생각만 해도 몸소리가 쳐진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이와 관련 A요양병원 관계자는 "민원을 제기한 환자나 보호자들은 나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라면서 "나 자신도 소음과 석면 피해를 우려한 환자들의 항의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