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벌제 동거 2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쌍벌제가 시행된지 2년이 훌쩍 넘었다. 이 제도의 수확은 리베이트 행위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하고 엄격한 기준은 문제로 지적받는다. <메디칼타임즈>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제도 개선 필요성을 타진한다. [편집자 주]
1) 산 속 정신병원 의사와는 어디서 밥 먹어야하죠?
2) 30분 발표하면 'OK' 20분 발표하면 '리베이트' 의심
다국적 A제약사는 지난해 홍콩에서 회사 미팅을 진행했다.
유럽 등 일부 국가에만 승인됐던 자사 신약이 한국 등 여러 국가에서 허가되거나 곧 승인될 조짐을 보이자 각국 의료진에게 최신 지견을 제공하기 위한 워크숍이었다.
하지만 정작 이 자리에 국내 의료진은 가지 못했다. 장소가 해외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물론 국내 의료진의 해외 워크숍 참석이 원천 금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쌍벌제 이후 엄격해진 규정에 한국 지사는 큰 노력도 하지 않고 지레 포기를 한 것이다.
A사 영업본부장은 "국내 의료진과 해외 워크숍에 나가려면 우선적으로 리베이트가 아님을 철저히 입증해야 한다. 그래서 교수 몇 몇에게 '30분 이상 발표가 가능하냐' 묻자 그런 것까지 하면서 굳이 가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결국 우리 한국지사는 논의 끝에 국내 의료진은 참여할 수 없다고 본사에 보고했다. 쌍벌제의 엄격한 기준이 국내 의료계의 최신 지견 습득 기회를 날린 셈이다. 까다로워도 너무 까다롭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국적 B사 영업본부장도 비슷한 고민을 피력했다.
그는 "국내 의료진은 해외 심포지엄에서 무언가 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리베이트가 안된다. 범인도 아니고 알리바이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누가 이런 취급 받으면서 갈려고 하겠느냐"고 한탄했다.
물론 그는 과거에 제약사가 국내 의료진을 대동하고 해외에 나갔을 때 접대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인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크게 정화됐고 불필요한 일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괜히 리베이트 행위를 했다가 걸리면 약가인하 등 회사가 입는 타격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해외에 국내 의료진과 나가도 심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일정이 빡빡하다. 물론 교수들도 바빠서 해외에 머무를 여유도 없겠지만 워크숍이 끝나자마자 뭔가에 쫓기듯 귀국해야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건 아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애매한 부분은 명확하게, 타이트한 기준은 융통성 있게"
A사 영업본부장이 제시한 사례처럼, 쌍벌제 이후 정당한 마케팅마저 위축받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쯤 되자 제약계, 의료계 등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쌍벌제 시행 2년이 넘은 현 시점에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 동아제약 동영상 강의료처럼 한쪽은 합법이라고 생각해 참여한 사례가 불법으로 적발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쌍벌제가 아무리 리베이트 근절이라는 큰 명분을 갖고 있어도 문제점이 있다면 이제는 개선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련 업계의 쌍벌제 개선 의지는 최근 활발했다.
대한의사협회가 제약사 영업사원 모든 병의원 출입금지라는 초강수를 던지며 쌍벌제 개선을 위해 제안했던 '의·산·정 협의체'도 그 일환이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장은 "의료계와 쌍벌제 모호성 부분에 뜻을 공감했다. 의료법, 약사법, 공정거래법 관계를 합리적이고 분명히 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의·산·정협의체를 추진하면서 논의를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우선적으로 학술대회와 PMS의 모호한 제도를 개선한다는 입장이다.
그간 제약계가 후원한 의료 관련 학회 및 세미나 등은 신의료기술 등 의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PMS는 의약품 부작용 사례 수집 등으로 환자 치료 향상에 일조했다는 순기능을 가졌다는 것이 의료계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제약계는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정확한 기준과 규정을 명시해 현장을 누비는 영업사원들이 범죄자 취급을 받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갈원일 한국제약협회 전무는 "약사법과 의료법 하위 지침을 둬 투명성, 비대가성, 비과다성 등 3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판촉행위 허용범위와 기준을 구체화하겠다. 시장 감시자는 물론 제약사와 의료인 모두 불법과 적법을 인지할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업계의 이런 움직임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분위기다.
복지부 의약품정책과 관계자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의료계, 제약계의 모습은 바람직하다. 앞으로도 공통된 목소리로 공식 요청이 있을 경우 의·산·정협의체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