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벌제 동거 2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쌍벌제가 시행된지 2년이 훌쩍 넘었다. 이 제도의 수확은 리베이트 행위가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애매하고 엄격한 기준은 문제로 지적받는다. <메디칼타임즈>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제도 개선 필요성을 타진한다. [편집자 주]
1) 산 속 정신병원 의사와는 어디서 밥 먹어야하죠?
2) 30분 발표하면 'OK' 20분 발표하면 '리베이트' 의심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아닐까요?"
'쌍벌제 동거 2년'을 평가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국내 A제약사 영업본부장이 답한 자조섞인 비유였다.
주는 자, 받는 자 모두 처벌받는 쌍벌제 시행(2010년 11월 28일)이 2년을 훌쩍 넘었다.
최근 동아제약 등 리베이트 적발 소식이 끊이지 않아 자칫 오해를 할 수 있지만 쌍벌제 이후 업계 불법 행위가 크게 줄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리베이트 근절 효과만 놓고보면 쌍벌제 도입 효과는 어느정도 '성공작'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제도로 인한 현장의 '혼란스러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애매하고 엄격한 기준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업계는 정당한 마케팅마저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사례가 다반사며 2년이 지난 지금도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횡단보도 건너면 회사 방침상 식사를 할 수 없습니다"
국내 B제약사는 쌍벌제 이후 하나의 방침을 내놨다. 영업사원이 제품 디테일 목적으로 의사와 밥을 먹는 경우 해당 병원 '반경 5km'를 벗어나지 말라고 것이다.
공정경쟁규약에 '의사와 식사를 할 경우 병원 '인근'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B사는 '인근'이라는 기준이 애매해 아예 식사 장소를 병원 '반경 5km'로 정해버렸다.
B사 법무팀장은 "어느날 한 영업사원이 난감한 표정으로 찾아왔다. 자신이 맡은 정신병원은 대부분 산 속에 있어 병원 인근에서 식사할 곳이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회사 방침을 따르자니 현실과는 맞지 않다며 찾아온 사례"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정신병원은 일례에 불과하지만 쌍벌제 이후 이런 애매한 부분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나마 공정경쟁규약에 담긴 내용은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없는 것은 아무리 좋은 취지라고 해도 아예 시도조차 안한다. 걸면 걸리는 게 쌍벌제이기 때문"이라고 환기시켰다.
10년차 다국적 C사 영업사원도 비슷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그는 "쌍벌제 이후 회사에서 '의사와의 식사는 병원이 속한 행정구역에서만 하라'고 지침이 떨어졌다. 웃긴 것은 내 담당 병원이 강남구 끝자락에 있다는 것이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맛집이 있는데 강남구가 아니어서 발을 돌렸던 기억이 있다"고 어이없어 했다.
"좋은 취지도 '의사'만 포함되면 여기저기서 쌍심지"
국내 D제약사 마케팅 팀장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지적 장애인을 돕기 위한 음악회 행사를 계획 중인데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어서다. 바로 행사에 현직 의사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는 "음악회 수익금은 전액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 행사는 지적 장애인과 의사가 호흡을 맞춰 악기를 다루는 식이다. 하지만 행사에 '의사'가 포함됐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저기서 쌍심지를 켰다. 이 바닥의 현실이 이렇다"고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솔직히 행사에 현직 의사를 포함한 것은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다. 인정한다. 어느 산업이나 고객에게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 쓰이는 기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약업계는 아니다. 의사가 참여하기만 하면 오해부터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다국적 E제약사는 쌍벌제 이후 매년 해왔던 학술상마저도 오해를 받고 있다.
E사 변호사는 "이제는 학술상도 리베이트 취급 받는다. 때문에 마케팅팀 등에서 자문을 구하면 내가 하는 단골 멘트가 있다. 공정경쟁규약에 명시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하지 말라고. 어이 없지 않은가"라고 토로했다.